풍수지리

국사로 불리웠던 지창률 선생의 풍수 업적에 의해서

eorks 2022. 12. 8. 04:30

풍수지리(風水地理)

국사로 불리웠던 지창률 선생의 풍수 업적에 의해서
청오(靑奧) 지창룡(池昌龍, 1922∼1999) 선생은 한국 풍수계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제일의 거목(巨木)임이 분명하다. 정부중앙청사, 동작동 현충원, 대전 국립묘지의 터를 잡아줌으로써, 김대중 대통령 선영(경기도 용인)을 잡은 손석우 씨와 더불어 한 세대를 풍미했던 풍수사로 기억 되어지고 있다.

지 선생은 또한 〈한국역술인협회〉를 창설하여 회장직을 지내며 한국 역학계에도 큰 이름을 남겼다. 묘소 앞 쪽에 〈청오지창룡선생추모비〉가 한국역술인협회의 이름으로 세워졌으니, 역술계에 끼친 선생의 혁혁한 공로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추모비에는 "태백산 봉화에 들어가 천문지리 공부에 열중, 3년만에 해안이 열려 … 청년 풍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전국에 널리 퍼져서 풍수하면 지창룡으로 통할 정도가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이승만 전대통령과 이병철 삼성회장의 묏자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정계·재계의 이름난 분들의 영면의 터를 잡아주었음을 저서에서 직접 밝혀, 향년 78세의 일기로 연천 땅의 선영 발치에 안장되었지만, 지금도 "풍수"하면 누구나 그 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필자는 지 선생이 역학계에 남긴 활약과 업적은 사실 모르며 또한 관심을 두거나 이야기할 입장이 못된다. 다만 국립묘지의 터를 소점하여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명예에 비추어보아 그 분의 풍수적 견해를 정통 풍수학의 입장에서 한 번 가늠해보고, 또 그 분이 한국 풍수학의 발전에 어떤 공적을 남기었는가를 되집어보고 싶었다.

추모비에는 역술인 협회의 발전과 역술인들 상호간의 화합에 힘쓴 여러 공적은 장문으로 기록 되어 있으나, 정작 풍수학에 대한 기록은 국립묘지·중요 공단·포항제철 등의 터를 소점했다는 행적만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럼으로 풍수계 거목에 대한 풍수 학인들의 이해가 더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것은 후학으로써 선배에 대한 예우이며, 또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두려운 점도 없지 않다. 풍수학을 21세기 인류에게 공헌하는 신지식·신학문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학인의 한 사람으로써, 지 선생의 풍수관과 업적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풍수학을 잡술이나 미신으로 터부시하는 현실에 비추어 풍수학에 대한 논쟁을 이끌어 내자면, 풍수로 일세를 풍미했던 지 선생의 업적을 재평가해 보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 여겨진다.

아울러 풍수학이 올바로 자리매김을 하고, 후학에게 풍수학에 대한 논쟁의 물꼬를 터줄 것을 기대한다. 이곳에서는 필자가 지 선생과 직접 대담한 내용, 선생의 저서들을 통한 풍수적 견해, 그리고 생전에 소점한 묘를 필자가 재감결한 결록(訣錄)을 바탕 삼아 이 글을 펼쳐 나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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