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명성황후 생가와 입태일 산출법(2)

eorks 2023. 5. 19. 05:26

풍수지리(風水地理)

명성황후 생가와 입태일 산출법(2)
◇여인의 눈썹을 닮았다는 생가 앞 아미산. 절세미인이 태어난다는 풍수적 물형으로 특히 양택 앞의 아미산은 더욱 귀하게 여긴다.

송암 강환웅 박사는 묘역 뒤 입수용맥은 기복 없이 힘이 분산됐으나 당판 앞의 전순(前脣)은 음택을 고를 때의 모범 물형이라고 말한다. 관상학적으로 식복을 타고난다는 여인의 ‘주걱턱’처럼 끝을 말아 올렸다. 봉분의 둘레석과 함께 혼유석 문인석 촛대석 등 석물이 많다. 해좌(북에서 서로 30도)사향(남에서 동으로 30도)이니 남향에 가까우며 향토유적 제5호다.

최근 들어 선대 묘를 치장한다고 고가의 석물 장식들을 많이 세우는데 바람직한 것인가를 물었다.

“돌과 물은 오행상 금생수(金生水)여서 서로 상생하는 관계잖습니까. 높은 바위틈에 연명하는 소나무가 긴 세월을 버텨냄은 습기를 머금었다 공급해 주는 암석 덕분입니다. 이런 연유로 특히 광중의 석관은 금물입니다. 더구나 습토에 석곽을 둘렀다가는 말 그대로 물구덩이에 유골을 모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뜨끔한 사람들이 많을 듯싶다. 풍수학적으로도 봉분 앞에 함부로 석물을 배치하는 것은 엄격히 금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치혈(伏雉穴·꿩이 엎드려 날아오르려는 지형)에 상석이나 비석 등 무거운 석물장식을 세워 놓으면 돌 무게에 짓눌려 날지 못한다는 해석에 따른 것이다. 내친김에 혈처를 택지할 때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와 참나무 아카시아 등 활엽수의 생장지 차이점에 관해서도 보충설명을 요청했다.

“원래 소나무는 지나친 습기를 싫어합니다. 반면 활엽수는 습지를 좋아하고 해마다 낙엽이 땅을 덮어 버려요. 땅은 비옥해져 좋은데 해충의 은신처가 되어 벌레가 모여 듭니다. 먹이를 찾아 개구리와 뱀이 꼬여들고 때로는 광중까지 파고들어 똬리를 틀어 버려요. 그래서 묘지는 기름진 땅이 좋지 않습니다.”

둔촌 묘의 좌청룡 끝 지점에 민유중 신도비가 서있다. 내청룡이 짧아 힘을 못 쓴 데다가 안쪽이 협소하여 세운 비보책이다.

◇생가 뒤에 있는 둔촌 민유중 묘.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 아버지로 명성황후의 직계 6대조가 된다.

생가는 해임좌(亥壬坐·북에서 서로 약 22도)에 사병향(巳丙向·남에서 동으로 약 22도)으로 동사택에 속하며 집 뒤 묘의 좌향을 약간 비켜 지었다. 옛 집 그대로인 것은 안채뿐이며 1995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등을 새로 복원했다. 동행한 김금희 사무국장(사단법인 대한풍수지리학회)이 대청에 걸린 명성황후 초상화를 살펴보며 “교과서에 나온 얼굴보다 훨씬 예쁜 것 같다”고 일침을 놓는다.

명성황후는 이곳에서 출생하여 8세까지 살다 부모를 여읜 뒤 혈혈단신으로 혼자 성장했다. 외척에 의해 국정이 농단된 순조 헌종 철종의 3대 왕 60년간 세도정치에 이가 갈린 흥선대원군은 이런 성장배경을 호재로 여겨 왕비로 간택했다. 훗날 대원군은 민비한테 온갖 능멸을 당하면서 자신의 경솔함을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한번 어긋난 역사의 물꼬는 되돌릴 수 없었다.

“사랑채 등을 복원하면서 대문을 잘못 냈어요. 동사택에서 손방(동에서 남으로 45도)의 동남향 대문이 좋다는 건 양택요결의 기본입니다. 공허한 지형에 비보석까지 세운 당시 명지관이 직사충(直射衝)을 맞게 대문을 냈겠어요?” 안과 밖의 두 대문 모두가 해좌사향으로 대청마루에서 아미산이 그대로 보인다.

대문을 나서 우측을 살피니 둔촌 묘에서 보던 것과 달리 외백호가 새로운 기세로 내려온다. 우측으로 기운 아미산이 참으로 잘생겼다. 저 산을 보고 다녀간 수많은 풍수학인들이 저 산 닮은 아미산을 찾느라 얼마나 속 태웠을까 하는 마음이 불현듯 인다. 어여쁜 딸 낳아 시집 잘 보내고 싶은 부모 마음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명성황후 생가에 와서는 아미산만 잘 보고 가도 ‘본전을 찾는다’고 말한다.

◇똑같은 좌향으로 복원된 안팎의 대문. 동사택에서 안채와 바깥채 대문을 한 방향으로 내는 일은 드물다.

명성황후는 열여섯 살 되던 해인 1886년 고종 왕비로 책봉된 뒤 1871년 원자를 출산했으나 4일 후 죽었다. 출생 당시 항문이 막혀 배설을 못하자 당시 개신교 선교사(의사)가 수술할 것을 진언했으나 왕실에서는 “어찌 감히 왕자의 몸에 칼을 대느냐”고 진노해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2년 뒤 공주를 낳지만 당일 죽고 1년 후 다시 왕자를 생산하니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다.

좋은 날 아기 태어나게 입태일(入胎日) 골라 부부 합방

옛 왕실이나 사대부 가문에서는 좋은 날을 택해 아이가 태어나도록 입태일(入胎日)을 골라 부부가 합방하도록 유도했다. 이는 사주팔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주(日柱)조작이 가능한 비법으로 당대 상류계층과 불가에 비전돼 온 입태일 산출법이다. 필자는 조계종 봉은사 조실이었던 박영암(1907∼1987) 대종사 재세 시 스님한테 전수받았다.

입태일 산출은 육십갑자의 천간지지 중 지지(地支)와 일진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방법이다.(별표 참조) 별표대로 일진에 자(子)와 오(午)가 든 날의 입태일은 276일 전이며 기준일은 89일, 적용일은 90일이다.

기준일은 1년 365일에서 입태일 276을 뺀 숫자며 적용일은 기준일에서 무조건 1을 더한 것이다. 다만 묘(卯)와 유(酉)일만 적용일이 두 가지임을 유의해야 한다. 이 공식에 따라 1995년 1월 7일 무술(戊戌)일 생을 예로 들어 입태일을 산출해 내면 다음과 같다. 이때 거꾸로 계산하는 역산(逆算)이 비법이다.

무술일이므로 적용일자가 70일이다. 이 70일을 기준으로 생일로부터 70일이 될 때까지 더해 나간다. 즉 1월이 31일까지 있으므로
▲1월은 31-7(생일)=24일
▲2월은 28(혹은 29)+24=52일
▲3월은 70-52=18일이므로 3월 18일이 수태일이다.
따라서 1995년 1월 7일에 태어난 사람은 1994년 3월 18일 계묘일에 부모가 합방하여 잉태한 것이다. 입태일 산출법을 생리주기와 맞춘 피임법으로 능숙히 활용하면 자연적인 일주를 택일하여 출산이 가능한 세상이다.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