凋落의 계절인 가을의 哀傷에 젖어 홀로 산길을 걸어가고 있던 김삿갓이 문득 개울건너를 바라보니 낙엽 쌓인 너럭바위 위에 4,5명의 선비들이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며 詩會를 열고 있었다.
술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김삿갓이 아니었다. 염치불구하고 그들에게 닦아가 술 한 잔을 청했고, 선비들은 불청객을 쫓으려고 시회하는 자리에서 는 시를 짓지 않고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고 했다.
김삿갓은 시에 능하지는 못하지만 술을 서너 잔 마시면 詩想이 떠오르는 버 릇이 있으니 먼저 술을 달라했고, 선비들은 먼저 시를 지어야 술을 주겠다고 옥신각신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빨리 쫓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좌중의 한 선비가 그러면 술을 먼저 줄 것이 니 자신이 있거든 마시고 내 시에 화답해 보라했고, 잠시 후 그는 기발한 시 상이라도 떠올랐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써 내려가고 있었 다.
돌 위에 풀이 나기 어렵고 방안에 구름이 일 수 없거늘 산에 사는 무슨 놈의 잡새가 봉황의 무리 속에 날아들었는고. 石上難生草(석상난생초) 房中不起雲(방중불기운) 山間是何鳥(산간시하조) 飛入鳳凰群(비입봉황군)
국화주를 서너 잔 얻어 마신 김삿갓은 선비가 써 내려가는 시를 넌지시 내려 다보면서 어이가 없어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자기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시였기 때문이다.
돌 위에 풀이 날 수 없고 방안에 바람이 일 수 없다는 말은 '글을 변변히 배 우지도 못했을 너 같은 촌놈이 무슨 놈의 시를 짓겠다는 것이냐.'는 비아냥 이었고,
다음 구절은 자기네는 봉황으로 자처하면서 김삿갓을 잡새로 몰아 붙였으니 그 얼마나 모욕적인 시란 말인가. 그래도 김삿갓은 역겨움을 참고 미소를 잃 지 않으면서 지필묵을 받자마자 다음과 같이 一筆揮之 했다.
내 본디 하늘 위에 사는 새로서 항상 오색구름 속에서 노닐었거늘 오늘따라 비바람이 몹시 사나워 들새 무리 속에 잘못 끼어들었소. 我本天上鳥(아본천상조) 常留五彩雲(상류오채운) 今宵風雨惡(금소풍우악) 誤落野鳥群(오낙야조군)
그들이 자기들은 봉황으로, 김삿갓을 잡새로 비유했으니 김삿갓은 역으로 그들을 <들새 무리>로, 자신은 <오색구름 하늘 위 새>로 자처하면서 통쾌 하게 반박하였다. '이 한 首면 술값은 족히 될 것이니 소생은 이만 물러갑니 다.'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시를 돌려가며 읽어 본 선비들은 모두들 노발대발하면서 김삿갓을 불러댔지 만 그는 들은 체도 아니하고 유유히 걸어갔다. 좋은 국화주에 얼큰히 취한 후에 시골 선비들을 잔뜩 골려 준 김삿갓은 가슴이 후련하기까지 했다.
어느새 가을이 완연하여 소슬바람은 옷깃 사이로 차갑게 스며들고, 하늘가 에서는 기러기 떼가 남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시골선비들의 같잖은 詩에 식 상한 김삿갓은 '그래도 시라면 이쯤은 돼야지.' 하면서 불현듯 劉禹錫의 秋 風引이라는 시를 떠올렸다.</오색구름></들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