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한 마루턱에 올라서니 산골치고는 제법 어지간한 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尹富者집이 아마도 저 집인가 보다.
안채는 기와를 올렸고 사랑채는 초가인 반 기와집이 마을 한가운데 덩그렇 게 자리하고 있어서
그만하면 나그네의 하룻밤을 의탁할 만해 보였다.
기꺼이 내려가 하루 밤 자고 갈 것을 청하니 60쯤 되어 보이는 주인은 나와 보지도 않고
사랑문을 열고 내려다보면서 손을 휘휘 저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사람이 사람 집에 왔건만 사람대접을 안 하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답지 못하구나. 人到人家不待人(인도인가부대인) 主人人事難爲人(주인인사잡위인)
입 속으로 주인의 非人事를 중얼중얼 나물해 보지만 그것으로 잠자리가 해 결될 일은 아니었다.
김삿갓은 염치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간청해 본다.
"영감님! 하루 밤만 자고 가게 해 주십시오. 날이 저물었는데 이 댁이 아니 면 자고 갈만한 데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안에서 아들인 듯싶은 두 젊은이가 나와 삼부자가 한 패 가 되어 손을 내두르면서 냉큼 나가라고 호통을 친다.
어이 없이 발길을 돌려 나오는데 때마침 어디선가 두견새 우는 소리가 구슬 피 들려오고 있었다.
석양 무렵 남의 집 사립문을 두드리니 주인은 거듭 손을 내 저으며 어서 가라네.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 알았음인가 돌아가는 게 좋으리라고 숲에서 울어 대네. 斜陽叩立兩柴扉(사양고입양시비) 三彼主人手却揮(삼피주인수각휘) 杜宇亦知風俗薄(두자역지풍속박) 隔林啼送不如歸(겯림제송불여귀)
"尹가라, 소축자(丑)에 꼬리를 느린 것이 尹자렸다. 그래서 옛날부터 윤가를 <소>라고 일러 오지 않았던가.
명절 때면 수난을 당하는 것이 소인데 지난번 단오절에는 무사히 넘겼나 보 다마는 돌아오는 추석은 어찌 넘기려느냐."
윤 부자네 집에서 냉혹하게 쫓겨난 김삿갓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욕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남에게 악담을 해 본일 없는 김삿갓이건만 윤부자네에 대해서는 악담이 절 로 나와 소리 높여 다시즉흥시를 한수 읊어 댄다.
동림산 기슭에 봄 풀이 욱어져 큰 소 작은 소 긴 꼬리 휘두르네 오월단오는 근심 속에 넘겼지만 추석명절이 또한 두렵지 않느냐. 東山林下春草綠(동산림하춘초록) 大丑小丑揮長尾(대축소축휘장미) 五月端陽愁裡過(오월단양수리과) 八月秋夕亦可畏(팔월추석역가외)
지독한 악담이었지만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그렇게 諷刺 해서라도 달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