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삿갓을 눌러 쓰고
醉翁과 醉談?을 나누다 돌아온 炳淵은 여러 날을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면서 번민하지만 별 다른 방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취옹이 "하늘을 보기가 부끄럽거든 상제처럼 삿갓을 눌러 쓰고 '棄世 人'이 되어 산천경개를 즐기면서 되는 대로 한 세상 보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일 것이라." 고 하던 말만이 세차게 머리를 때린다.
老母에게만 잠시 바람이나 쏘이고 오겠다고 하직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선 병연은 큼직한 삿갓부터 하나 샀다.
비도 안 오는 날에 삿갓을 쓰고 보니 지팡이라도 하나 짚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주막에 들러 취옹과 석별의 정을 나눈다.
병연을 맞은 취옹은 술상을 마주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자네 참말로 삿갓을 썼네 그려.
그래 어떤 결심이라도 했는가?" 하고 묻는다.
병연은 묵묵히 술만 마시다가 紙筆墨을 청하여 대답대신 詩 한 수를 적어 내려간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랑타죽) 飯飯粥粥生此竹(반반죽죽생차죽) 是是非非付彼竹(시시비비촌피죽)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취옹노인은 머리를 갸웃 거리면서 "나는 암만해도 알 길이 없네그려.
형식으로 보아서는 七言律詩 같네마는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하고 묻는다.
허허 웃으면서 병연은 대답한다.
선생께서 날보고 되는 대로 살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詩도 되는대로 쓰는 거지요.
대죽(竹)자 아닙니까?
그러니 竹자를 <대로>라는 뜻으로 보시면 됩니다.
제가 풀이를 할 테니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다면 옳거니 그르면 그르려니 저대로 두세.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장터에서 사고팔기는 시세 돌아가는 대로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지내세.
풀이를 다한 병연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선생께서 저에게 가르치신 것 아닙니까?"
하고 짐짓 너스레를 떤다. 풀이를 들으면서 배꼽을 움켜잡고 너털웃음을 웃고 있던 취옹은
"격에는 맞지 않아도 名詩임에는 틀림없는 破格詩라"고
칭찬한 후에 숙연한 자세로 돌아와 조용히 술잔을 건넨다.
"자네 시를 들으니 이제 작별하면 언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겠나."
"선생님! 부디부디 오래 사십시오."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병연을 취옹은 한사코 산을 내려와 냇가까지 배웅을 한다.
냇가에 서서 차마 보내지 못하고 하늘가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던 취옹 은 문득 시 한 수를 읊는다. 그대 가면 이 봄 동산을 뉘와 함께 노닐고 새 울고 꽃 덜어졌는데 물만 부질없이 흐르네. 이제 그대를 배웅하며 물가에 섰으니 뒷날 내 생각나거든 냇가에 와 보게.
君去春山誰共遊(군거춘산수공유) 鳥啼花落水空流(조제화낙수공유) 如今送別臨淨水(여금송별임정수) 他日相思來水頭(타일상사래수두)
송별시를 듣고 난 병연은 눈시울이 뜨거워져 취옹노인의 손을 덥석 움켜잡 았다.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사십시오."
그저 그 말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계속~
~김삿갓이야기를 122회에 걸처 게시할까 합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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