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2. 壯元及第(장원급제)한 아들

eorks 2024. 8. 17. 19:33


2. 壯元及第(장원급제)한 아들

    金炳淵이 白日場에 나가 응시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무 살 나던 해 늦은 봄의
    어느 날이었다.

    백일장이란 草野의 無名儒生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각 고을 단위
    로  글 짖기 대회를 여는 일종의 地方科擧와 같은 것이었다.

    순수하게 학문을 좋아 하였을 뿐,

    공명심이나 출세욕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병연은 처음부터 백일장 따위
    에는 나가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출세를 할양이면 어엿이 서울에 올라가 과거를 볼일이지, 지지리 못 나게
    시골 백일장은 보아 무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달랐다. 시골 백일장에서 장원급제를 해도 그것은
    그저 한 고장에서의 명성일 뿐 벼슬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들의 힘으로
    가문을 다시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리어 영월 백일장에 나온 병연은 동헌
    에 높이 걸인 오늘의 詩題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열다섯 자는 氣槪
    있는 선비라면 한번 筆鋒을 휘둘러 볼만한 論題였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이 나라에 벌어졌던 대역사건,

    그 중의 대조적인 두 인물, 鄭嘉山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金益淳의 하늘에 이르는 죄를 탄핵하라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의 사적을 너무도 잘 아는 김병연은 붓을 들어 첫머리를 이렇게 시
    작 했다.


          대대로 신하라고 일컬어 오던 너 김익순아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오랑캐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李陵 같은 놈이요
          열사 정시의 공은 죽은 뒤에 드높았다.
       曰爾世臣金益淳(일이세신김익순)
       鄭公不過卿大夫(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壟西落(장군도이롱서낙)
       烈士功名圖末高(열사공명도말고)

    역적 김익순을 탄핵하는 김병연의 붓끝은 추상같았다.
    선천방어사 김익순이란 자를 진작부터 미워하여 왔기에 충신 鄭蓍와 비교
    하여 가면서 그의 죄상을 여지없이 질타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다시 붓을
    달린다.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자고로 대장이 지켜 오는 큰 고을
          가산보다도 먼저 의를 지켜야 할 곳이 아니더냐.

       詩人到此亦慷慨(시인도차역강개)
       撫劍悲歌秋水涘(무검비가추수사)
       宣川自古大將邑(선천자고대장읍)
       比諸嘉山先守義(비제가산선수의)

          너와 정공은 모두 한 임금의 신하인데
          죽는 마당에는 어찌 다른 마음을 품었던가.
          태평성대나 다름없던 신미년 그 해에
          관서에서 풍운이 일었으니 그 무슨 변괴이더냐.

       淸朝共作一王臣(청조공작일왕신)
       死地寧爲二心子(사지영위이심자)
       昇平日月歲辛未(승평일월세신미)
       風雨西關何變有(풍우서관하변유)

          주나라를 높인 충신이 노중련 하나가 아니요
          한나라를 돕기 위해서 제갈량 같은 이가 많았듯이
          우리나라에도 만고의 충신 정가산이 나와
          맨손으로 풍진을 막다가 절개 세우고 죽지 않았더냐.

       尊周孰非魯仲連(존주숙비로중연)
       輸漢人多諸葛亮(수한인다제갈량)
       同朝舊臣鄭忠臣(동조구신정충신)
       抵掌風塵立節死(저장풍진입절사)

          가산에 묻힌 늙은 관리의 명성은 갈수록 드높고
          그 이름은 가을 하늘의 태양처럼 빛날 것이니
          혼백은 남묘에 돌아가 악비와 벗할 것이요
          뼈는 서산에 묻혀 백이숙제와 이웃하리로다.

       嘉陵老吏揭名旌(가릉로리게명정)
       生色秋天白日下(생색추천자일하)
       魂歸南畝伴岳飛(혼귀남무반악비)
       埋骨西山傍伯夷(매골서산방백이)


    김병연은 정가산의 장렬한 전사광경을 눈앞에 그려보며 머리를 숙이고
    그의 충절을 경건한 마음으로 한 것 찬양했다.
    그러나 충절을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는 김익순
    같은 비겁하고 용렬하면서도 교활하기 그지없는 역적을 철저히 규탄하는
    것이 더욱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쪽에서 들려오는 소식 서글프기 그지없기에
          국록 먹은 불충한 신하 뉘 집 사람인가 물었더니
          문벌은 명성이 드높은 장동김씨요,
          항렬은 장안에서 소문난 순자 돌림이라네.

       西來消息慨然多(서래소식개연다)
       問是誰家食祿客(문시수가식록객)
       家聲壯洞甲族金(가성장동갑족김)
       名字長安行列淳(명자장안행렬순)

          가문도 훌륭하고 성은도 두터웠으니
          백만대적 앞에서도 의를 굽히지 말았어야 할 것을
          청천강 물에 고이 씻긴 병마는 어디다 두고
          철옹산에 간직했던 궁시는 어떻게 했단 말이냐.

       家門如許聖恩重(가문여허성은중)
       百萬兵前義不下(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청천강수선병파)
       鐵甕山樹掛弓枝(철옹산수괘궁지)

          임금 앞에 꿇어 드나들던 그 무릎으로
          서북 흉적에게 꿇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황천에도 가지 말거라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 아니냐.

       吾王庭下進退膝(오왕정하진퇴슬)
       背向西域凶賊股(배향서역흉적고)
       魂飛莫向九泉去(혼비막향구천거)
       地下猶存先大王(지하유존선대왕)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한 번 죽어서는 오히려 가볍고 만 번 죽어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부끄러운 이 사실은 우리 역사에 길이 전하리라.

       忘君是日又忘親(망군시일우망친)
       一死猶輕萬死宜(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춘추필법이지부)
       此事流傳東國史(차사유전동국사)


    실로 통렬하고 신랄한 규탄이었다. 마지막 구절을 끝낸 김병연은 가슴이
    후련 했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뭉쳐 있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낸 통쾌함과 이제까지
    익히기만 했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글재주를 마음껏 발휘해 본 뿌듯함이
    온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윽고 동헌마당에는 급제자의 방문이 나붙었고

    그 첫머리에 '壯元及第 金炳淵' 일곱 자가 크게 두드러져 보였다.

    병연은 기뻤다. 백일장의 장원급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기뻐하
    실모습을 떠올리면서 효도를 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 다음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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