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4. 煩悶(번민)하는 詩人(시인)

eorks 2024. 8. 20. 14:17
4. 煩悶(번민)하는 詩人(시인)

    백일장에서 자기가 그토록 추상 같이 매도했던 대역죄인 金益淳이 바로 자
    기 할아버지였음을 확인한 金炳淵은 한 순간에 천길 나락으로 떨어진 운명
    의 비통함과 조상에게 지은 돌이킬 수 없는 罪責感,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는 自愧感으로 하여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자처했다.

    몇 번이고 죽기로 결심했지만 늙은 어머니의 만류를 거역하지 못한 그는 어
    디 가서 술이라도 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전의 백일장 길에 만났던 
    주막의 凡常치 않은 주인 영감을 머리에 떠 올렸다. 짧은 만남 속에 몇 마디 
    나눈 대화였지만 그는 분명 예사 노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전일보다 한결 반갑게 맞아 주는 주막집 노인은 찾아온 젊은이가 일전에 백
    일장에서 장원급제한 김병연이라는 시골 선비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邊應洙
    라는 자기 본명을 굳이 숨기고 醉翁이라고만 한다는 이 노인은 科擧를 열 번
    이나 보아서 모두 낙방하고 세상을 떠돌다가 우연히 젊은 주모를 만나 이곳
    에 숨어 산다고 했다.

    그는 醉翁이라는 자기 별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태백의 시 한 수로서 설
    명을 대신했다.
  
             술 취하면 세상만사를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외로운 꿈에 잠기네.
             내 몸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
             세상에 이런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醉後先天地(취후선천지)
             兀然就孤枕(올연취고침)
             不知有吾身(불지유오신)
             此樂爲最甚(차락위최심)

    병연과 술자리를 마주한 취옹은 병연의 백일장 詩를 줄줄 외우면서 참으로 
    놀랄 만큼 才氣 넘치는 名詩라고 칭찬해 대면서도 그 내용은 별로 찬성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 어떤 점이 그토록 못 마땅하였느냐고 따져 묻는 병연
    에게 그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

    "老子 道德經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뜻을 천하에 펼 수 없다.
    (樂殺人者 不可鎰志於天下)"고 했는데 그대는 산 사람도 아닌 죽은 사람을 
    다시 한 번, 그것도 무참히 난도질을 해 놓았으니 그것을 어찌 지각 있는 
    사람이 찬성할 일 이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에 金益淳에게 후손이 있어 그대 글을 보았다면 그대를 
    얼마나 원망하겠느냐." 고도 했다. 이 말에 깜짝 놀란 병연은 이 노인이 자기
    와 조부와의 관계를 훤히 알면서 비웃는 것 같아서 화가 치밀어 거세게 항변
    했지만 무심중에 자기 비밀만 스스로 폭로한 꼴이 되고 말았다.

    70평생을 산 사람으로서 그저 원칙론을 폈을 뿐인 취옹은 병연의 처지를 알
    고 보니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覆水不返盆이라고 이미 엎질
    러진 물을 어찌 하겠는가. 그는 슬쩍 隱喩的인 표현과 익살로 그를 위로한다.

    죽고 싶다는 병연에게 "어머니가 계신데 그 앞에서 죽는 것은 또 하나의 죄
    를 짓는 것이라" 하고, 죽지도 못하면 어떡하느냐는 물음에는 "自作之孼不
    可活이라는 말과 같이 스스로 저지른 재앙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니 그 괴로
    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 스스로 지은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仰不愧於天이라고 했는데 하늘을 어떻게 우러러보며 사느냐고 하니 그는 
    허허 웃으면서 "상제처럼 삿갓을 쓰면 되지."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삶
    이라도 이야기 하는 듯, 모든 욕망을 초월한 棄世人이 되면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했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산수간을 마음대로 떠도는데 있다.
    (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고 슬쩍 자기의 속내를 내비친 그는 술 
    한 잔을 다시 들이킨 후에 목청을 돋우어 옛 시 한 수를 읊는다.
 
             萬事無心一釣竿(만사무심일조간)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

    술에 취하고 자기가 읊는 시에 취하여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뜬 그는 이런 말
    을 덧붙인다. "모든 욕망을 깨끗이 버리고 한세상을 산천경개와 더불어 되
    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매우 운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고.              

     ~다음으로 계속~    


                ~김삿갓이야기를 122회에 걸처 게시할까 합니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