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36. 花樹花花立(화수화화립)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

eorks 2024. 10. 15. 09:16

36. 花樹花花立(화수화화립)
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


    飄飄然亭(표표연정)에서 釋王寺(석왕사)까지는 산길로 100여 리,

    표표연정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석왕사에 당도한 김삿갓은 먼저 半月行者(반월
    행자)를 찾았다.

    그는 空虛스님의 말씀대로 좀 모자라기는 하지만 인품만은 선량한 사람이 었다.
 
    30세 쯤 되어 보이는 반월행자는 자기의 스승이신 공허 큰스님으로부터 삿 갓선
    생의 말씀을 익히 들었다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본시 글재주도 조금은 있는 편이어서 스님이나 선비를 만나면 괴이한 글을
    써놓고 뜻을 풀어 보라고 하는 '글풀이내기'를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고기가 물을 만난 듯 김삿갓을 만나 겨우 인사를 나누고 저녁 을
    먹고 나자 예외 없이 글풀이내기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선비가 글짓기 내기라면 또 모를까 유치하게 글풀이내기가 다 무엇이란 말 인가.

    그러나 김삿갓으로서는 회피할 처지도 아니었다.

              花樹花花立(화수화화립)
              松風松松吹(송풍송송취)

    이렇게 써 놓고 반월행자는 의기양양하여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고 묻는다.

    자기도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부고를 장난삼아 柳柳花花(버들버들하다가 꼿꼿
    해 졌다)라고 쓴 적이 있는 김삿갓이고 보면 그것을 모를 이가 없었다.

              꽃나무는 꼿꼿이 서 있고
              花樹花花立(화수화화립)
              솔바람은 솔솔 불어 온다
              松風松松吹(송풍송송취)

    김삿갓이 선뜻 풀이를 하자 반월행자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문제를 낸다.

    반월행자가 한문으로 쓰면 김삿갓이 우리말로 풀이하는 문답을 밤이 이슥하도
    록 아래와 같이 계속 하였다.

              春折秋(춘절추) 봄에 갈(葦)을 꺾고
              晝摘夜(주적야) 낮에 밤(栗)을 딴다.

              芹有叔而無姪(근유숙이무질)
              미나리아재비라는 풀은 있어도 미나리조카라는 풀은 없고
              鼠有婦而無姑(서유부이무고)
              쥐며느리라는 벌레는 있어도 쥐시어미라는 벌레는 없다.

              家貧雙月少(가빈쌍월소)
              집이 가난하니 벗이 적고 (雙月=朋)
              衣弊半風多(의폐반풍다)
              옷이 해어지니 이가 많아진다. (風자의 반쪽은 虱(이슬)

              鳥去枝二月(조거지이월)
              새가 날아가니 나뭇가지가 한달 한달 (二月=한달+한달)
              風來葉八分(풍래엽팔분)
              바람이 불어오니 나뭇잎이 너풀 너풀 (八分=너푼+너푼)

              人皆以三十日爲一月(인개이삼십일위일월)
              남들은 세 십일을 한달이라 하지만 (10일x3)
              吾獨二十五日爲一月(오독이십오일위일월)
              나는 두 십오일을 한달이라 한다. (15일x2)

              世皆以虧月爲半月(세개이휴월위반월)
              세상 사람들은 이지러진 달을 반달이라 하지만
              吾獨以滿月爲半月(오독이만월위반월)
              나는 둥근 달을 보고 반달이 됐다고 한다. (십오야)

    반월행자도 어디서 그렇게 괴이한 문구들을 주워 모았는지 모르지만 김삿 갓의
    풀이솜씨가 참으로 대단하다.
    풀어 놓고 보니 그럴 듯하지만 한문만 보고서야 어찌 해석할 엄두나 내겠는가.
    이후 반월이 김삿갓을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