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변 땅 두루 돌다 좋은 정자 만나니 술을 찾고 시를 쓰며 물갈래를 묻노라 고목은 정이 많아 꾀꼬리 모여들고 강물은 거침이 없어 갈매기 나네. 一城踏罷有高樓(일성답파유고루) 覓酒題詩問幾流(멱주제시문기류) 古木多情黃鳥至(고목다정황조지) 大江無恙白鷗飛(대강무양백구비)
김삿갓은 시를 한 수 읊고 나자 불현듯 가학루에 걸려 있던 鄭夢周, 鄭道傳 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그들은 정치색이 농후한 영웅호걸들이어서 그 들의 시에는 무언중에 風雲味 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성대가 아닌가.
영웅은 가고 세상은 조용하여 길손은 다락 위에 한가롭게 앉았노라 관동 땅 아직 두루 보지 못했으니 기러기를 따라서 장주로 내려가리. 英雄過去風煙盡(영웅과거풍연진) 客子登臨歲月悠(객자등임세월유) 宿債關東猶未了(숙채관동유미료) 欲隨征雁下長洲(욕수정안하장주) *長洲는 定平의 옛 이름
김삿갓은 자기 자신을 아무 욕심도 없는 순수한 시인으로 자처하는 동시에, 세태변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한 세상을 숨 가쁘게 살았던 정몽주, 정도 전 같은 영웅들을 은연중에 비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