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의 방에서 술에 취하여 쓰러진 김삿갓은 정신없이 자다가 목이 타올라 깨어 나서 원앙금침 속에 누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저으기 놀랐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모르지만 한편 구석으로 밀어 놓은 술상 위에서는 아 직도 등잔불이 방안을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는데 바로 옆에는 가련이 짐짓 잠들어 누어있는 것이 아닌가.
굶주린 매가 꿩을 덮친다(飢鷹抱雉;기응포치)는 말과 같이 김삿갓인들 오랫 동안 금 욕생활을 해 온 터에 맹렬히 용솟음쳐 오르는 욕망이 없을 수 있을 까마는,
그래도 선비의 체통은 지켜야겠기에 잠시 욕망을 누르고 조용히 가련을 품 어 안으며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한 수 읊었다.
젊은 몸에 기생을 품으니 돈도 티끌 같고 이 밤에 술까지 나누니 만사가 구름 같네. 날아가는 기러기 물을 따라 내려앉듯 산속을 지나는 나비 꽃을 피하기 어렵구려. 靑春抱妓千金芥(청춘포기천금개) 今夜當樽萬事雲(금야당준만사운) 鴻飛遠天易隨水(홍비원천역수수) 蝶過靑山難避花(접과청산난피화)
짐짓 잠에서 깬 듯 그의 품안으로 파고들던 가련은 시를 듣고 나서 퍽이나 감격스러운 듯 '노류장화의 몸을 위해 그토록 귀한 시를 읊어 주시니 영광 스럽기 그지없다' 고 아뢴다.
'내가 시를 읊었으니 자네는 화답이 있어야할게 아니냐.' 고 채근하는 그 에 게 가련은
'저는 시를 좋아는 하지만 지을 줄은 모르니 옛날 기생 小紅(소홍)의 시를 한 수 읊어 올리겠다.' 고 했다. 찬바람 눈보라가 주렴에 몰아쳐서 기나긴 밤 잠 못 이루니 안타깝구나. 이 몸이 무덤 되면 누가 찾아 줄는고 가엽고도 외로운 한 송이 꽃이라오. 北風吹雪打簾波(북풍취설타렴파) 永夜無眠正若何(영야무면정약하) 塚上他年人不到(총상타년인불도) 可憐今世一枝花(가련금세일지화)
김삿갓은 그 시를 듣자 가슴이 찡해 오는 것을 느꼈다. 기녀들은 겉으로는 퍽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무척 고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련은 '어제까지는 저도 외로운 여인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도 행복하옵니다.'하면서 다시 세차게 파고든다.
'허어--- 자네가 누구의 간장을 녹이려고 이러는가.' 하고 너털웃음을 웃으 면서 김삿갓은 가련의 가는 허리를 힘차게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