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기녀에게 몸을 묶어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자기를 스스로 반성해 보기도 했다.
「병연아! 너는 조상의 죄와 네가 지은 죄를 모두 속죄하기 위하여 처자식 을 버리고 집을 나온 몸이 아니더냐.
그러한 네가 이제 와서 기녀의 품에서 방탕을 일삼고 있다면 너 또한 한낱 무뢰한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김삿갓은 그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가서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었다.
어느 날 새벽에 무심코 창을 열어 보니 산과 들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김삿갓은 길을 떠나야 한다는 충동을 느끼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 었다.
하얀 눈가루를 누가 하늘에 흩뿌렸는가. 눈이 부시도록 다락 앞이 밝구나. 모든 골자기에 달빛이 어린 듯하고 산들은 옥으로 깎은 듯 그 모습 그윽하다. 白宵誰飾亂灑天(백소수식란쇄천) 雙眸忽爽霽樓前(쌍모홀상제루전) 鍊鋪萬壑光斜月(련포만학광사월) 玉削千峰影透烟(옥삭천봉영투연)
배를 타고 剡溪(섬계)로 숨은 사람을 찾아가 반가운 그 사람과 글 토론이나 할까나 솜씨 좋은 문장가가 이 좋은 경치보고 나면 그림 같이 멋들어진 시 백 편은 읊으리라. 訪隱人應隨剡掉(방은인응수섬도) 懷兄吾亦坐講筵(회형오역좌강연) 文章大手如逢此(문장대수여봉차) 寫景高吟到百篇(사경고음도백편) *섬계는 옛날 대문장가 戴逵(대규)가 숨어 살던 곳.
뒤미처 잠에서 깨어나 창밖의 은세계를 내다보며 좋아하던 가련은 무심코 김삿갓이 쓰고 있는 시를 내려다보다가 가슴이 철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