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김영랑(金永郞)님의 詩

eorks 2007. 4. 14. 18:35

김영랑(金永郞)님의

    1.<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2.<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3.<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4.<내 마음을 아실 이>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 5.-독(毒)을 차고-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6.<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 7.-오월(五月)-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 밤 너 어디로 가 버리련? -------------------------------------- 8.-춘향(春香)-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
김영랑 : (金永郞,1903~1950) 본명은 윤식(允植). 전라남도 강진출생.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한학을 배우고 상경하여 휘문의숙에 입학했다. 3.1운동때에는 강진에서 거사하려다가 일본 경찰 에 체포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일본 에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에서 수학했다. 박용철,정지용,변영 로,신석정 등과 더불어 <시문학>지를 창간, 주재함으로써 1930년대 이땅의 서정시 운동을 본격화했다. 그는 시의 본도 가 서정에 놓여져야 하며, 그것은 언어의 섬세한 조탁에 의해 미학적 수준으로 상승돼야 함을 강조하였다. 깨끗한 언어 감 각과 예민한 감수성, 그리고 잘 다듬어진 시형에 의해 고독한 내면의 세계를 주로 노래했다. 1935년에 <영랑시집>을 간행했 다. 일제 말기에는 창씨와 신사 참배를 거부했고, 광복 후에는 우익 민족 운동에 참가한 바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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