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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집(申瞳集)님의 詩
1.<목숨>
목숨은 때묻었다.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表情)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億萬光年)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體溫)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자(者)는 죽은 자를 증언(證言)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告發)하라
목숨의 조건(條件)은 고독(孤獨)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白鳥)는 살아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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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송신(送信)-
바람은 한로(寒露)의
음절을 밟고 지나간다.
귀뚜리는 나를 보아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운 돌에 수염을 착 붙이고
멀리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나.
어디선가 받아 읽는 가을의 사람은
일손을 놓고
한동안을 멍하니 잠기고 있다.
귀뚜리의 송신(送信)도 이내 끝나면
하늘은 바이없는
청자(靑瓷)의 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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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오렌지>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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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집 : (申瞳集,1940~ ). 대구 출생. 호는 현당(玄堂). 서울대와
미국 인디애너 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영남대 교수
계명대 교수를 역임. 주로 모더니즘 경향이짙은 시를 창작
하였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1), 아시아 자유문학상
(1985), 대한민국 예술원상(1992)을 수상함. 대표적 시집
으로는<서정의 유형>(1954), <제2의 서시>(1958), <모순의
물>(1963), <빈 콜라병>(1968), <귀환>(1971), <행인>
(1975), <해뜨는 법>(1977),<장기판>(1980),<암호>(1984)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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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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