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박목월(朴木月)님의 詩

eorks 2007. 4. 28. 06:41

박목월(朴木月)님의

        1.<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2. -가정(家庭)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3.<빈 컵>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를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죠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 4. -윤사월(閏四月)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5. -이별가(離別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6.<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7. -하관(下棺)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 8.<산 도 화> 산(山)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
박목월 : (朴木月,1916~1978).경북 경주출생. 본명은 영종. <문장>지에 <길처럼>,<연륜>(1939)등이 추천되어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조지훈,박두진 등과 더불어<청록집> (1946)을 간행하여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연을 배경으로 애절한 서민의 정서를 민요조 가락으로 읊 었으며, 이후 따스한 가족적 유대의 시를 남기고, 만년에는 신앙에 깊이 침잠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 잡지 <심상>을 간 행했고, 동요집으로 <박영종 동요집>(1946), 동시집으로<초 록집>(1946)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산도화>(1955), <난.기타>(1959),<산새알 물새알>(1962),<청담>(1964), <경상도 가랑잎>(1968),<무순>(1976)등이 있고, 자작시 해설 집으로 <보랏빛 소묘>가 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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