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징전비후(懲前毖後)

eorks 2010. 5. 23. 20:46
故 事 成 語


징전비후(懲前毖後)


懲:
징계할 징. 前:앞 전. 毖:삼갈 비. 後:뒤 후

지난날을 징계하고 앞날을 삼가다.                                      
      이전에 저지른 과오(過誤)에서 교훈을 얻어 뒷날에는 일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成王 (성왕)이 왕위를 계
     승했다.

     그러나 성왕은 아직 나이가 어려 그의 숙부 周公(주공)이 攝政(섭정)을 하게
     되었다.

     주공은 무왕이 殷(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인
     물이다.

     그러자 무왕의 사촌형인 管叔(관숙)과 蔡叔(채숙)은 주공을 시기한 나머지
     주공이 성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기 위해 역적 모의를 하고 있다고 헛소
     문을 퍼뜨렸다.

     그리고는 은나 라의 마지막 왕인 紂王(주왕)의 아들 武庚(무경)과 손잡고 반
     란을 일으켜 성왕을 몰아내려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왕은 시 한 수를 지어 이 반란을 기어코 평정하겠다
     는 뜻을 다졌다.

     이 시가 바로 '시경'에 수록된 '周頌(주송)''小毖篇(소비편)' 으로 그 첫구
     절이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으로 되어 있다.

     지난날의 과오를 뼈아프게 새기면서 앞으로 다시는 다른 환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

     '지난날의 과오'란 한때 성왕이 간신들의 모함하는 말을 믿고 주공을 멀리했
     던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懲前毖後(징전비후)는 이 시 구절을 따서 후세 사람이 만든 것. 반란은 주공
     의 노력으로 진압되고 무경과 관숙은 처형당하고 채숙은 멀리 유배(流配)
     길을 떠났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西厓(서애) 柳成龍(유성룡)이 전쟁을 회고 하면서 쓴
     '懲毖錄(징비록)'은 바로 懲前毖後에서 따서 붙인 제 목. 왜란을 교훈으로 삼
     아 스스로 힘써 다시는 그런 前轍(전철) 을 밟지 말자는 뜻이다.


     [출 전]《詩經》

......^^백두대간^^........白頭大幹

'고사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재두량(車載斗量)  (0) 2010.05.25
차래지식(嗟來之食)  (0) 2010.05.24
징갱취제(懲羹吹제)  (0) 2010.05.23
질풍경초(疾風勁草)  (0) 2010.05.23
진충보국(盡忠報國)  (0) 201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