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철중쟁쟁(鐵中錚錚)

eorks 2010. 6. 4. 00:16
故 事 成 語


철중쟁쟁(鐵中錚錚)


鐵:
쇠 철, 中:가운데 중, 錚:쇠소리 쟁, 錚:쇠소리 쟁

여러 쇠붙이 중 유난히 맑은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 가운
      데 특별히 뛰어난 사람을 이름.                                                            


     후한(後漢) 때 광무제(光武帝)의 이야기이다.
     그 때 나라안 은 군웅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장안(長安)에 적미(赤眉), 농서
     에 외효, 하서(河西)에 공손술(公孫述), 수양(雖陽)에 유영(劉永), 노강(盧江)
     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에는 장보 (張步) 등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황제는 먼저 적미(赤眉) 토벌을 시도했다. 

     적미는 전한 경제(景帝)의 자 손에 해당하는 유분자(劉盆子)를 황제에 추대
     하고 있어서, 황제는 등우(鄧禹)와 풍이(馮異)를 보냈으나 전세가 불리하 자
     황제가 몸소 출진하여 겨우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대장 번숭(樊崇)이 유분자를 데리고 웃통을 벗어 스 스로를 벌하는
     모습을 하고 항복해 온 것이다. 그래서 유분 자에게 물어 보았다.

     "그대는 자기의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가 아닌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유씨 일족을 망신시킨 놈"

     이어 번승에게 물어 보았다.

     "아군의 실정을 보고, 항복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때, 다시 일
     전을 해볼 텐가?"


     함께 항복한 참모 서선(徐宣)은, 숭이 입을 여는 걸 기다리지 않고, 머리를
     땅에 내리치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호랑이 입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품에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항복한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할 뿐, 후회는 없 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수는
     서선을 향해 만족스럽게 말했다. "

     그대는 철중쟁쟁(鐵中錚錚)이고 용중교교(庸中교교(人+交) 로다.

     유수는 그들에게 낙양에 살곳을 마련하고 전답을 하사했다.

     '용중교교'란 범인(凡人) 중에서 좀 나은 자라는 뜻이다. 철중쟁쟁과 함께
     그만그만한 자 중에서 좀 나은 자를 두고 말한다.

     광무제의 생각은, 정말 유능한 인간이라면 시세의 추이를 통찰해 벌써 귀순
     했을 것이고, 천하의 대세를 분별 못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아직도 항
     복을 받아들이지 않 고 버티고 있을 것이다.

     항복한 시기는 결코 이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도 고집을 부리고 있는
     어리석은 자에 비하 면 차라리 낫다고 본 것이다.





     [출 전]《後漢書》<유분자전(劉盆子傳)>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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