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이야기

색동옷 입고 춤추다

eorks 2013. 8. 21. 08:02
고전(古典) 이야기 ~효와 윤리~
색동옷 입고 춤추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의 노래자(老萊子)는 효자로 유명하다. 노 래자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하여 그 효성을 따를 자가 없었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효성이 깊어졌다. 부모 님께 드리는 음식은 늘 맛있고 부드러운 것으로 하였고, 부모 님이 입으실 옷은 언제나 가볍고 따뜻한 것으로 준비했으며, 아무리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온 화하게 하여 편안한 마음을 가지시도록 했다. 노래자의 나이 70이 되었을 때도 부모님은 건강하였는데, 노 래자는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오색 색동 옷_綵衣_을 지어 입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언제나 어린애로 생 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어린애처럼 재롱 을 피우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어느 날 그 노래자가 부모님의 진짓상을 올리다가 그만 발 을 헛디뎌 땅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노래자는 어린애처럼 `응애, 응애!` 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자신이 늙고 기력이 없어 서 땅에 넘어진 것을 부모님이 눈치 채지 못 하게 하기 위함이 었다. 노래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학자로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 았다. 난세를 피해 몽산(蒙山)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 데 그가 거처하는 곳마다 추종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새로 마 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는 중국 원(元)나라 곽거경(郭居敬) 이 선정한 `24효`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24효`는 우 순(虞舜) · 한문제(漢文帝) · 증삼(曾參) · 민손(閔損) · 중유(仲 由) · 동영(董永) · 염자(琰子) · 강혁(江革) · 육적(陸績) · 당 부인(唐夫人) · 오맹(吳猛) · 왕상(王祥) · 곽거(郭巨) · 양향(楊 香) · 주수창(朱壽昌) · 유검루(庾黔婁) · 노래자(老萊子) · 채순 (蔡順) · 황향(黃香) · 강시(姜詩) · 왕포(王褒) · 정난(丁蘭) · 맹종(孟宗) · 황정건(黃庭堅) 등 중국의 유명한 효자를 이른다. 중국 효자 얘기 하나 더, 삼국시대 때 오나라에 맹종(孟宗)이 란 사람이 있었다. 편모슬하에서 자랐는데 무척 효자였다. 어 머니가 나이가 많아 병으로 누웠는데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 다. 맹종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병석의 어머니는 도통 음식을 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대순이 먹고 싶다고 했다. 때는 겨울이었다. 죽순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맹종은 대순을 구 하러 나갔다. 대밭에 가서 대순이 돋아나도록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도 눈을 뚫고 새파란 죽순이 하나 가 돋아 나오는 것이 아닌가, 대순을 얻은 맹종이 어머니께 드 리게 되었다. 눈 속에서 대순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나 지극한 정성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인물로는 신라 흥덕왕 때 손 순(孫順)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손순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서 품 을 팔아 곡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 손순에게 어 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늙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매우 곤혹스러웠다. 손순이 하루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들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 없소, 아들이 어머니의 음식을 뺏어 먹어 어머니께서 배고파하시니 아이를 땅에 묻어야겠소." 아들을 묻으려고 땅을 파니 돌로 만든 종(鍾)이 나왔다. 손순 과 아내가 그 종을 두드리니 소리가 매우 좋았다. 아내가 손순 에게 말했다. "이 이상한 종은 우리 아들의 복인 것 같으니 아이를 땅에 묻 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손순도 그렇게 생각되어 아이를 다시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다시 그 종을 치니 종소리가 대궐에까지 다다랐 다. 흥덕왕(興德王)이 그 소리를 듣고 명을 내렸다. "서쪽에서 오묘한 종소리가 울리니 어찌 된 까닭인지 알아보 라."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가 손순의 집에 찾아가 알아보고 왕에 게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이 말했다. "옛적에 곽거(郭巨)가 아들을 묻을 때 하늘이 금으로 만든 솥 을 주시더니 이제 손순이 아들을 묻음에 땅에서 석종이 나왔으 니 앞과 뒤가 서로 맞는다." 흥덕왕은 손순에게 집 한 채와 벼 50석을 내리고 칭찬을 하였 다. 곽거(郭巨)는 후한 때의 효자로 중국 이십사효(二十四孝) 의 한 사람이다. 어머니 봉양을 위해 자식을 묻으려고 하자 하 늘에서 금으로 만든 솥을 내려주었다고 전한다.<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편, 효성이 지극했던 신라 때의 인물 상덛은 흉년과 열병이 유행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굶주려 죽게 되자 낮이나 밤이나 옷을 풀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안심을 하도록 위로해 드렸다. 봉양할 것이 없을 때는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드렸고, 어머 니께서 종기가 나자 입으로 빨아서 곧 낮게 해 드렸다. 임금이 그 말을 들으시고 어여삐 여겨 재물을 후하게 내리고, 그 집에 정문을 세울 것을 명하는 한편 비석을 세워 그의 효행을 기록 케 하였다. 맹종의 고사를 떠올리게 되는 또 한 명의 효자는 도씨다. 도 씨는 집이 가난했지만 효성이 지극하였다. 숯을 팔아 고기를 사서 어머니 반찬에 부족함이 없이 하였다. 하루는 장에서 늦게 바삐 돌아오는데 솔개가 어머니께 올리 려던 고기를 채갔다. 도씨가 슬피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데 솔개가 벌써 고기를 집안 뜰에 던져 놓았다. 하루는 병이 난 어머니가 때 아닌 홍시(紅枾)를 찾았다. 감 나무 숲으로 간 도씨는 이곳저곳 헤매느라 날이 저문 것도 몰 랐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앞길을 가로막으며 타라고 하는 시늉을 하였다. 도씨가 호랑이를 타고 백 리나 되는 산동네에 이르러 사람 사 는 집을 찾아들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주인이 제삿밥을 차 려 주는데 밥상에 홍시가 있었다. 도씨는 너무나 기뻐 홍시의 내력을 묻는 한편 자신이 이곳까지 온 이유를 털어 놓았다. 주인이 대답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감을 즐겨 드셨기 때문에 가을이 면 감 이백 개를 가려서 모두 굴 안에 감추어두었는데 제사를 지내는 5월이 되면 상하지 않은 것은 고작 7,8개에 지나지 않 았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상하지 않은 것이 쉰 개나 되어 마 음속으로 이상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곧 그대의 효성에 감동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은 홍시 스무 개를 내어 주었다. 도씨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밖으로 나오니 호랑이가 아직 누 워 기다리고 있었고, 호랑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닭이 울었다. 훗날 어머니는 천수 다하고 돌아가셨고, 도씨는 피눈 물을 흘렸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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