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생(尹生)이란 자가 관서에 객유(客遊)하더니, 한 촌집에서 묵을새,
비에 막혀 돌아오지 못하였다. 안주인이 비록 늙었으나 말씨와 모양
과 행동거지가 촌노파같지 않았던 바 하루는 안주인이 웃으며 가로되,
"행차가 반드시 심심하실 터인데, 내가 옛날 얘기나 해드려서, 한번
웃으시는 게 어떠하오십니까? "
"그것 참 좋습니다. "
하고 윤생이 답하였다.
이때 주인 늙은이(남편)가 즐기지 않으면서 하는 말이,
"불길한 말을 이제 또 말하려고 하느뇨? "
"당신과 내가 함께 늙은지라 그 말을 해서 무엇이 해로우리오? "
하며 노파가 이어서,
"내가 본시 초산기생(楚山妓生)으로 나이 열 여섯에 초산 사또에게
홀리어, 그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그의 방에서만 함께 지내더니, 사
또가 의외에 갈려가게 되어, 이별에 임하여 이에 소용의 가장집물을
전부 나에게 주며, 또한 후하게 먹을 것까지 준 후에 나에게 가로되
'내가 돌아간 후에 너도 곧 뒤따라 올라와서 함께 백 년을 지내는
것이 옳으리라' 해서 내가 울면서 허락한지라. 사또가 간 후에 정분
을 억제치 못하여 그가 준 것으로 패물로 바꾸어 가지고 동자 한 놈
만 데리고 홀홀히 떠나갈새, 겨우 수일간의 길을 가다가, 때마침 추
운 겨울이라 대설(大雪)이 나부끼며 가던 길을 잃어버려, 동자로 하
여금 말을 버리고 길을 찾게 하였더니, 그릇하여 깊은 눈 구덩이에
빠져 그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은지라,
중도에 머뭇거리게 되매, 추위는 심하고 다리는 아픈 위에 날 또한
어두워지던 터에, 멀리 깜빡거리는 등불이 숲 사이에 명멸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집이 있음을 알고 간신히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본즉,
그것은 하나의 부처님 암자인데, 고요하여 사람 하나 없고 탁자 위에
다만 흰 부처님 한 분이 계실 뿐이라, 속으로 생각하기를 방 아랫목이
이미 따뜻하고 등불이 또한 밝은데, 중도 없으니 괴상하고도 괴상하
도다.
그러나 일이 이 지경으로 궁한 처지에 어디 달리 갈 데가 없고 해서,
몸소 말 안장을 풀어 죽을 쑤어 말에게 먹이고, 홀로 방 가운데 누워
천천히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얼마 후에 몸이 녹으면서 번열증이 심
한지라, 사람은 없고 해서, 치마 저고리를 다 벗고 속옷만 입고 몸둥
아리를 드러내 놓고 누어 있었더니, 뜻 아니한 중에 스님 한 분이 달
려들어 강간하니, 비록 항거하려고 하였으나 밤중 깊은 산에 그 누가
와서 구해 주리오.
원래 이 스님은 이미 십여 세때부터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벽곡(벽穀
: 생식)하고 홀로 암자 가운데 사니, 나이 바야흐로 이십 팔 세라, 위
에 이른 바 탁자 위의 백의 부처님이 곧 그라. 계행이 비록 높으나 정
욕이 움직인 바 되니, 어찌 가히 억제하리오. 이튿날 창문을 열고 바
라보니 적설이 처마에 쌓여 돌아가고자 하나 어찌 할 수가 없어, 그럭
저럭 겨울을 나니, 두 사람의 정분이 함께 흡족하거늘, 스님이 가로되,
'나도 그대를 구하지 않았고 그대도 나를 찾지 않았건만 어찌 길로
쌓인 눈이 나로 하여금 그대를 만나게 하여 줄줄 알았으랴. 나의 계행
은 그대로 인하여 훼손되고, 그대의 절개는 나로 인연하여 이지러졌
으니, 일이 이에 이르러 묘하게 합치게 되었도다. 이는 하늘이 그대
와 나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바이라 할 것이니, 어찌 반드시 옛 낭
군을 찾아가서 첩이 될까 보냐. 나와 더불어 해로하여 함께 안락함을
누리는 것이 어떠하냐? ' 하거늘 내 또한 생각해 보매 말과 실지가 이
치 있는 듯하여, 그 스님을 따라 여기에 와서 산즉, 아들과 딸을 낳아
집안이 또한 넉넉하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가 아니리오. 저 늙은이가
바로 당일의 산승입니다."
하니 늙은이 또한 웃으면서 말이 없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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