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書堂)이라고 해 봤자 남의 집 사랑에 불과한 곳이었다. 글
을 배우러 다니는 총각들도 겨우 여섯 명 뿐이었다. 하지만 글방
선생은 학식이 많은 분이어서 온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었으며, 학생들도 저녁밥까지 싸 가지고 다니며 밤 늦게
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어느 날, 선생이 낮선 총각 하나를 학동들에게 소개시키면서
말했다.
"이번에 아랫마을 김 서방네 집을 사서 이사 온 한천수(韓千
洙)다. 오늘부터 함께 공부하게 되었으니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
라. 하지만 공부만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학동들은 접장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면서 두 눈들은 크게 떴다.
새로 들어온 총각의 얼굴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유난히 긴 눈썹은 계집애의 그것처럼 칠흑같이 고왔고 동그
란 얼굴과 콧날, 그리고 영롱한 두 눈도 유난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천수라고 하오.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굵직한 목소리는 남자의 그것이었다.
여섯 명의 학동들 중에 아랫마을에서 다니는 영봉(永鳳)이라는
총각이 있었는데,
`으음, 저 애가 바로 어제 이사 왔다는 집 아들이군. 그나저
나 대단한 열성이로군. 이사 온 다음 날부터 자식을 서당에 보낼
정도니……`
하고 감탄을 했다. 동시에 마음 속으로부터 흐뭇한 기대감이 솟
았다. 그 때까지는 혼자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갔었
는데 이제 함께 갈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우선 반가웠고, 그의
얼굴이 계집처럼 곱게 생겨서 좋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 날은 읽는 글의 내용이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
았다.
저녁때가 되어 빙 둘러앉아 서로 해 가지고 온 밥들을 꺼내놓
고 먹기 시작했을 때, 학동들은 비로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
다.
"영봉이가 제일 좋겠구나. 함께 다닐 길동무가 생겼으니……"
하고 한 학동이 말하자 천수가 미소지으며 반문했다.
"아, 형님도 아랫마을에서 사시나요?"
"그래, 그런데 천수는 올해 몇 살이야?"
"열여섯입니다."
"그럼 내가 형님 소리를 들어도 괜찮겠군. 열일곱 살이니까…
…"
"아, 네……"
영봉과 천수는 아무런 어색함도 없이 친해졌다.
그 날 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매봉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내려왔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매봉산 줄기가 끝나는 나직한 산기슭을
돌아 미루나무들이 도랑가에 줄지어 서 있는 수레가 다닐 만한
길을 한참 동안 내려가면 나타나는 벌판에 있었다.
모두 십여 호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산굽이를 도
는 곳에는 숲이 있어서 어두운 밤에는 누구나 그 곳을 지나가기
를 싫어했다.
그 날 밤만 해도 잔뜩 흐린 날이어서 주위가 무척이나 어두웠
기에 두 사람은 더없이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총각인 이상에는 난데없이 여자 생각이 머
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인데, 그것도 열댓 살 때부
터 열일곱, 여덟 살 때까지가 한창이다.
더욱이 총각들끼리 모여 한담을 나누다 보면, 여자 이야기가
꼭 나오게 된다..
영봉이 불쑥,
"천수는 얼굴이 고와서 처녀들의 가슴 깨나 울렁거리게 만들
었겠군?"
하고 말하자 천수는 쑥스러워하면서 대답했다.
"에이 참, 형님두……"
영봉은 원래 마음씨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약간 짓궂은 면이 있
었다. 천수가 쑥스러워하는 것이 재미 있었는지 그는 다시 물었
다.
"여자를 품에 안은 맛은 어떨까?"
"……"
천수는 대답하지 않으며 외면했다.
영봉은 점점 더 짓궂어졌다.
"그래, 처녀애들이 얼마나 꼬였어?"
"에이, 몰라요 형도 참……"
천수는 몸을 비비 틀면서 대답했는데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
지만 얼굴까지 빨개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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