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이인 정북창(鄭北窓)의 아우인 정고옥이라는 인물이 있
었는데, 그도 형과 아울러 천하의 이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고옥의 이웃에서 한 사람의 병자가 발생하자 이웃 사람들이 떠
들어 댔다.
"오래 살다 보니 별놈의 병을 다 본다."
"무슨 병이기에 그러나?"
"글쎄, 다섯 가지 빛이 연이어 몸에서 일었다 없어졌다 하니
그게 대체 무슨 병인가."
"글쎄."
"그런 병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모두들 병이 이상하다는 말들만 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병
자는 백약이 무효가 되고 백의(百醫)가 소용없이 되어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 집 식구들은 모두 수심에 잠겨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 동네 사람 하나가 찾아 와서 말했다.
"좋은 수가 있소."
"무슨 수요?"
"정고옥 선생께 보여 보시오."
"고옥이 고칠 수 있을까?"
"온갖 재주를 다 가진 사람이니까, 시험삼아 한 번 보여 보시우."
"그럴까."
그리하여 환자 집의 사람들이 고옥을 찾아가 청하게 되었고,
고옥도 이웃집 사람의 중병을 그냥 모른 체할 수가 없어 그 집으
로 가서 진맥을 하게 되었다. 고옥은,
"다섯 가지 빛이라."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하여간 이 약을 써 보시오."
하고 다섯 가지 약을 주었다.
병자는 그 약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을 뜨고 긴 한
숨을 쉬었다.
"이제 살아났다."
그 집에서는 야단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동네 사람들 중에
서
"하여간 정고옥은 귀신과 같다."
하면서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고옥이 집에 돌아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비몽사몽간
에 험상궂게 생긴 자 하나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옆으로 쓱 오더
니
"여보."
하고 고옥을 불렀다.
"왜 그러시오?"
"그래, 남의 원수의 병을 고쳐 주어 원수를 갚지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 있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이웃집에 사는 그 사람이 바로 내 원수요. 그래서 내가 다섯
가지 빛깔로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는데 당신이 그를 살려 주고
말았단 말이오."
"그거야 이웃간에, 또 죽는 이를 살리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소?"
"이번에 여섯 가지 빛이 나는 병으로 놈을 죽일 테니 당신은
아예 간섭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도 원수로 알겠소."
그 괴물은 그렇게 말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별 고약한 놈도 있군."
정고옥은 잠에서 깨었다. 그 때 이웃집에서 급히 사람이 왔다.
"야단났습니다."
"좀 나아지던 병자가 갑자기 전신에 여섯 가지 빛이 나타나며
신음하고 있사온데 아무래도 죽을 것만 같습니다."
"오오 그래?"
"빨리 좀 와 주십시오."
"그래 알겠다."
가 보니 병자는 과연 여섯 가지 빛깔을 가진 채 다시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이 약을 먹이고 빨리 물을 가져다 먹이시오."
병자는 고옥이 준 약을 먹자 또 씻은 듯이 몸의 상태가 나아졌
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로군."
"고옥은 역시 신의다."
"암, 그렇고 말고."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서 그의 재주를 칭찬했다.
고옥이 집으로 돌아가 방 안에 들어갔더니 또 귀신이 나타났
다. 그리고는 떡 버티고 서서 말했다.
"당신 때문에 볼장 다 봤소 이제는 당신이 내 원수요."
"무엇이 어째."
"내 원수를 당신이 또 살리지 않았소."
"이놈아! 옥추경(玉樞經) 소리나 듣고 어서 없어져라."
고옥이 낭낭한 목소리로 옥추경을 외우기 시작하자 귀신은 비
명을 질러댔다.
"아야야."
"사불범정(邪不犯正)인 것이지 고연 놈같으니."
그 후로는 귀신이 다시 얼씬도 하지 못했다. 때문에 `고옥은 귀
신도 범하지 못한다`라는 소문이 경향간에 자자하게 되었다.
하늘이 불가마처럼 뜨겁던 어느 날이었다. 정고옥의 사랑에 십
여 명의 친구들이 놀러 와 있었다. 좁은 방인지라 사람이 많이
모이니 찌는 듯이 더웠다.
"어, 덥구나."
"찐다 쪄."
"한증막이야. 한증막."
"그나저나 이렇게 더워서야 견뎌 낼 수가 있나."
"여보게들,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하세."
"어떻게?"
"고옥에게 별유천지나 보여 달라고 하세."
"그게 될 일인가."
"되구 말구."
"그렇다면 졸라 보세."
땀을 흘리며 떠들어 대던 친구들은 드디어 고옥에게 말했다.
"여보게 고옥, 이렇게 더우니. 신선 놀음이나 좀 시켜 주게나."
"원 별 소릴 다 하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시켜 주게."
"원 참, 그러면 떠들지 말고 가만히들 있게."
"그러지."
친구들은 모두 일제히 입을 다물고 고옥을 지켜보았다. 고옥은
마당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조그만 샘터가 있었는데 그는 그 옆
에서 뭐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여보게들 이제 됐으니 나오게."
하고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불렀다.
그 말에 우르르 몰려 나간 친구들은 눈 앞에 전개된 경치를 보
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냐!"
"여기가 대체 어딘고?"
"저 푸른 호수를 좀 보게나! 배도 있구만."
"아 시원도 해라."
"주란 화각에서 녹이홍상(錄衣紅裳), 천녀(天女)들이 놀고 있
군!"
"가세, 저리로 가세, 가."
그들은 두둥실 떠가듯 누각으로 걸음을 옮겨 갔다. 그들이
누각에 이르자 선녀들이 시원한 안주와 술을 차려 들고 나왔다.
그들은 다시 환성을 올렸다.
"한잔 먹세."
"취하도록 먹자구."
"으흥, 좋아라."
그들은 시원하고 흥겨운 김에 무한히 마시고 실컷 놀면서 떠들
어 댔다.
"여기서 이대로 살았으면."
"저 선녀들과 말인가?"
"하하하."
그 때 마침 그 아득한 호수에서 큰 숭어 한 마리가 배 위에 철
썩 뛰어올랐다. 그들은 모두
"이야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원한 누각에서 혹은 배 위에서 실컷 마시고 먹고 춤추고 노
래하던 그들은 마침내 심신이 피곤해져서 모두 누각으로 올라와
깊이 잠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서 보니 그들은 고옥의 집 뒤 샘터
옆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아니, 여기가 어디야?"
"허어, 한바탕 꿈이었고나."
"시원한 꿈이었다."
"꿈이라고는 해도 너무나 좋았어."
그들은 모두 꿈 속에서의 신선 놀음을 회상하면서 고옥에게,
"자네 덕에 호강했어."
하고 치사했다. 그랬더니 고옥은 빙그레 웃음지으며 그들에게 이
렇게 반문했다.
"신선 놀음 꿈에서 깨니 현실이 더더욱 덥다고 않는가?"
고옥이 그의 형 북창과 함께 어딘가 가고 있을 때였다. 한 마
을을 지나다가 커다란 기와집을 바라보던 고옥이 형을 보면서 불
쑥 말했다.
"저 집 야단났습니다."
"그래."
"저 집 말씀예요."
"그래, 그렇구나."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보고서도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않겠니."
"제가 도와 주고 가겠습니다."
"그래라."
"형님은 먼저 가십시오."
"그래라."
이리하여 고옥은 그 집으로 가서 주인에게 말했다.
"실은 당신 댁에 큰 액이 있기에 소인이 그것을 면케 해 드리
러 왔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오나 액이라니요?"
"아무 소리 말고 숯 열 섬만 구하십시오."
"네에?"
주인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으나 횡액을 면케 해 준다는
바람에 급히 숯 열 섬을 안마당에 쌓아 놓았다. 고옥은 그 숯을
한꺼번에 피우라고 했다.
"그리고 쌀곳간을 여시오."
"곳간에 무엇이 있습니까?"
"글쎄, 어서 열기나 하시오."
주인이 곳간을 열었다. 그랬더니 안에서 집채만한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마당으로 스르르 나왔다. 그리고는 온 마당에 활활 피
어 있는 숯불 속으로 끌려들어 가듯이 들어가 죽고 말았다.
"아니?"
"으흑!"
"허어!"
동리 사람들은 모두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그대로 있으면 이 집이 망하게 됩니다."
"허어, 그래요? 고마우셔라!"
"이인이시다."
그는 그 집에서 큰 환대를 받고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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