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마을에 과부가 살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답게 생
긴 여인이었다.
어느 날 그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절에서 한 스님이 시주
를 얻으러 동네에 내려왔다가 이 과부집에 들르게 되었다.
"나무아미타불, 시주를 바랍니다."
"예, 대사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옥이 쟁반에 구르는 것 같았
기에 스님은 그만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 어떻게 시주를 받
았는지도 모른 채 절에 올라 와서는 이내 병이 나고 말았다. 이
스님은 힘도 세고 도술도 뛰어나 웬만한 일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만 아리따운 이 과부에게 마
음을 빼앗겨 생병을 앓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이 스님은 병을 어
느 정도 추스른 다음에 동네에 내려와서는 멀찌감치 서서 우물가
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과부가 물을 길러 오면 사랑을 고백하려
는 것이었다.
드디어 과부가 나타나자 스님은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물 한 모
금을 청했다. 그 과부가 알아보고 가볍게 인사를 했기에 침을 꼴
깟 삼키고 나서,
"수도자로서 할 말은 아니오나…… "
하고 입을 열자 과부는 얼굴을 붉히면서 작은 소리로, 하지만 단
호하게 잘라서 말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오나 저
는 수절하는 과부이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저는 시주댁을 처음으로 본 순간부
터…… "
"하지만, 대사님…… 우리 두 사람은 도저히 맺어질 수가 없는
신분입니다."
"하오나…… "
과부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
녀는 이윽고 눈을 뜨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정 그러시다면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알기로는 대사께서 도
승이라 못 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 고을 사람들은 조금
만 가뭄이 들어도 농사를 짓지 못하여 모두들 속상해하니 보(洑)
를 하나 쌓아 주십시오 그렇다면 대사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 그런 일을 하는 건 어렵지 않지요. 그럼 시주댁에서는 내
가 보를 쌓는 것을 지켜보기나 하십시오."
"아닙니다. 저도 약간의 재주가 있기에 그것을 보여 드릴까 합
니다. 저는 저 삼밭에서 삼을베어다가 자아서 베를 짜 장삼옷을
지어 놓고 진짓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누가 빨리 끝내는지 내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대사께서 먼저 보를 쌓는다면 이 몸을 가지십시
오 하오나…… "
"아, 알겠소이다."
그렇게 되어 흔치 않은 내기가 시작되었다. 대사가 하는 일은
물론 혼자 보를 쌓는 것이다. 힘이 든다. 이만저만한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과부는 엉뚱하게도 자기 몸을 내걸고 동네에 유익
한 사업인, 오래 전부터 쌓고 싶었던 숙원의 공사를 그 스님에게
부탁한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런 의견을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온 동네와 절간에서는 목숨을 건 이 내기를 주시하였다.
치열한 내기는 드디어 막바지에 이르렀다. 과부는 어느덧 베틀
에서 내려와서 삼베를 말아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삼 한 벌
이 순식간에 지어졌다. 이어서 그녀는 불을 때서 밥을 짓고 상을
주섬주섬 보았다. 스님이 보를 다 쌓았는지 아직 못 쌓았는지 알
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서 중을 이겨서, 수절도 할 수 있고
동네에 정말로 요긴한 보도 쌓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님은 어찌되었던가? 그도 쌓기를 다 끝내고 있었다.
나무날 데가 하나도 없는 멋지고 튼튼해 보였다. 이만하면 과부
를 색시로 맞이하면서 동네에 좋은 일도 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
니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쪽이 좀 부실해 보였다. 돌 하나만 갖다가 올려 놓으
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기는 하였으나 이왕이
면 완전무결하게 끝내고 싶어서 근처에 있는 적당한 돌 하나를
둘러메고 다가서고 있었다. 이제 보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는 것
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대사님, 진짓상 가져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과부가 밥상을 들고 그의 눈 앞
에 나타난 것이다.
스님은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아, 내가 졌단 말인가?`
그가 메고 있던 커다란 돌이 갑자기 무거워지며 그의 몸이 짜
브러지고 있었다. 정신이 흐려져 도술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악!"
스님은 메고 있던 돌에 눌리고 말았다. 과부는 들고 있던 밥상
을 놓고 그에게 달려갔다 스님은 사랑하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
이 섞인 눈으로 과부를 올려다보다가 숨을 거두었다.
"아, 내가 경솔했구나. 나 같은 아녀자의 절개가 중하다면 저
대사의 목숨 또한 중하거늘. 나 혼자만 어이 살리."
과부는 스님이 메고 오던 그 바위를 불끈 들어올렸다. 그 과부
도 천하장사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힘을 뺀 그녀도 또한 그 돌
에 눌려 죽고 말았다.
이 보는 그 후에 보를 다시 쌓았다고 하여서 중보라고 하는데,
전라남도 광양군 옥룡면 죽천리에 있는 중보거리의 내력담이 되
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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