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新羅末期)의 유명한 인물 최고운 치원(崔孤雲致遠)
은 대문장가(大文章家)였다. 그는 신비한 전설로 에워싸여 있으
나, 사실 역사적 인물로서의 최고운은 그처럼 신비할 것도 없다.
최치원의 자(字)는 고운(孤雲)이었고 그는 신라 시절의 문창령
(文昌令) 충(沖)의 아들이었다.
신라 왕(新羅王)이 하루는 충을 불러서 문창령(文昌令)을 제수
했더니, 집에 돌아온 그는 그 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수심에 잠
겨 울기만 했다. 그의 부인이 괴이하게 생각하여 연유를 물었더
니 충은 수심이 가득해진 얼굴로,
"예로부터 문창령으로 부임하기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부인
을 잃었다 하니 이제 우리들도 그 곳에 가기만 하면 어찌 그같은
변괴를 면할 수가 있겠소."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부인도 그 날부터 우수와 걱정이 태
산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충은 왕명(王命)을 거역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싫으면서도 억지로 문창현령(文昌縣令)으로 부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을 데리고서……
문창현에 부임한 충은 그 곳의 노인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이 곳에 현령으로 부임한 사람들이 왕왕히 그 부인을 잃었다
하니 그것이 사실인가?"
노인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러한 일이 한두 차례가 아닌가 생각하오."
충은 장정들을 소집하여 고을의 안팎을 경계케 하고, 스스로
담력을 기르며 동현에 높이 앉아 정사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며, 뇌성과 벽력이 진동
하더니 원님의 부인이 어디론가 없어지고 말았다. 놀란 비복(婢
僕)들이 들어와서 원에게 고했는데, 충은 무슨 변괴가 있을까 항
상 경계하며 그 부인의 손에 미리 붉은 실의 한끝을 동여 매어
두었다. 그는 현리(縣吏) 이적(李績)과 더불어 그 붉은 실이 가
닿은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
붉은 실은 마을 뒤에 있는 일악산(日岳山)으로 향하고 있었는
데 그 곳으로 달려가 보니 붉은 실은 바위 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충은 바위 밑에서 부인을 부르며 슬피 울었다. 그
러나 한 번 들어간 붉은 실은 다시 나올 것 같지 않았고 돌문이
닫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함께 온 이적이 충을 위로하며 말하였다.
"이 돌문이 밤이면 열린다 하니 돌아갔다가 밤에 다시 와서 보
십시다."
충은 이적의 말대로 밤에 다시 와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과
연 문은 열려 있었고 그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흘러 나왔
다. 충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
가 보았다. 얼마쯤 들어 가니, 앞이 툭 트이고 온갖 기화 요초들
이 무성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세계가 나타났다.
그는 함께 들어온 이적을 돌아보며,
"참으로 훌륭한 곳일세. 아마 신선이 사는 곳인가 보군."
하고 중얼거리고는 오십 보 가량 더 덤듬어 들어갔다. 그랬더니
그 곳에 큰 집이 한 채 솟아 있는데,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천궁
(天宮)과도 같았다. 충은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창과 틈으로 그 화
려한 방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향기가 풍겨 오는 방 안에 한 마
리의 금빛 돼지가 충의 처의 무릎을 베고 혼곤히 잠들어 있는 것
이 아닌가. 그리고 그 뒤에서는 수십 명의 여인들이 주욱 늘어서
서 시위하고 있었다. 그 여인들은 모두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충은 미리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짐작하고 그 부인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런지 모르니 향낭(香囊) 한 개씩을 만
들어 찹시다."
말했으며, 주머니 한 개씩을 가지고 있었다. 충이 향낭을 꺼내 향
내를 풍기자 그 냄새를 맡은 부인은 남편이 온 줄 알고 구슬프게
울기 시작하였다. 때아닌 울음 소리에 놀라 깬 금돼지는
"이 무슨 요란한 인간 세상의 향냐인가?"
하고 중얼거리며 코를 쫑깃쫑깃했다. 충의 아내는,
"인간 세상의 향내라니요? 바람이 불어 난초 향내가 풍겨 오는
가 하나이다."
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금돼지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그리 슬피 우는가? 무슨 딱한 사정이라도 있는가?
말해보라."
충의 부인이
"소첩이 이 곳에 와서 대감을 모시고 있사오니 그 위에 바랄
것이 없겠사오나, 이 곳의 풍속 습관과 모든 풍습이 인간 세상
것과는 다르온지라, 저도 모르게 슬퍼져서 그러나이다. 또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사와 슬픈 생각을 억제할 수 없어서 그러나이
다."
하고 말하자 금돼지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 곳은 인간 세상과는 판이하여 영생불사(永生不死)하는 곳
인즉, 그러한 근심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어."
하고 위로했다. 충의 처는 그 말을 듣자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
각하며,
"제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신선계의 사람들을 범의 가죽을
보면 무서워하며 죽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옵니
까?"
하고 물어 보았다. 금돼지는 무심코 대답했다.
"호랑이 가죽은 아니고, 다만 사슴의 가죽을 더운 물에 축여서
목 뒤에 붙이면 말 한 마디 못하고 죽지."
충의 부인은 그 방에 사슴의 가죽이 없는 것만이 한이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의 허리에 차고 있는 은
장도 칼집의 끝이 녹피였다.
그녀는 이윽고 금돼지가 깊이 잠이 든 틈을 타서 그 끈을 풀어
서 입에 넣고 침에 축여서 그의 목덜미에 붙였다. 그랬더니 금돼
지는 별안간 큰 비명을 한 번 지르면서 나자빠져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충은 부인을 만났으며, 또한 그 전에 붙잡혀 온 수많은
여인들을 데리고 굴 속에서 빠져 나와 인간 세상으로 돌아왔다.
충의 부인은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 만에 동자를 낳았는
데, 충은 크게 의심하여 하인에게,
"그놈을 바다에 갖다가 버리고 오라."
하고 명했다.
그랫더니, 그 날부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젖을 먹여 키운
다는 소문이었다. 충의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은 금돼지의 아들로 알고 버리라고 했는데 그것 보시오.
하늘이 아는 아이가 아니요. 도로 데려다가 기르도록 하십시다."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충은,
"이제 새삼스러이 다시 데려오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 아니오."
하고 말했다. 이에 부인은 그러면 좋은 수가 있으니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무당 하나를 불러서 귓속말로 무엇이라고 소근거렸다. 후한 뇌물
을 주고서……
[내일로 계속.....]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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