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우루과이 /카를로스 가르델 음반 원판 ‘오라시오 로리엔테 컬렉션’(1913~1935)
[Original records of Carlos Gardel – Horacio Loriente Collection (1913-1935)]
1913년~1935년에 만들어진 이 컬렉션(전자 장치가 사용된 것과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은 다수의 레코드 원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1887~1935)이 부르는 770곡을 통해 ‘소르잘 크리오요(zorzal criollo, ‘혼혈아 나이팅게일’이라는 뜻으로 가르델의 별칭)’의 가창력을 빠짐없이 감상할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파리·뉴욕 등지에서 제작된 이 레코드 컬렉션에는 가르델의 레퍼토리를 이루었던 29가지 음악 장르와 다양한 스타일이 포함되어 있다. 이 컬렉션은 보존 상태가 완벽하여 아주 특이한 뉘앙스를 풍기는 카를로스 가르델 특유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다. 생존한 동안 가르델의 목소리는 비천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매료시켰는데 이들은 가르델의 노래가 자신들을 그려낸다고 느꼈으며 가르델을 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여겼다. 뿐만 아니라, 파리와 바르셀로나에서 거둔 그의 성공과 풍부한 매너, 발산되는 매력 때문에 그는 살롱이나 클럽에 초대되어 속물적인 고위층의 사람들까지 모두 매혹시켰다.
물론 유럽이나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그의 음악회를 찾았던 사람들도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와 완전히 다른 그의 특이한 목소리에 사로잡혔다. 남아메리카 영화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는 영화에 음향이 도입되는 혁신과 프랑스와 미국에서 이루어진 에스파냐 어 공동 제작 영화 덕분에 가수와 영화배우로서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나고, 그의 최초 녹음이 있은 지 100년이 다 된 지금도 가르델은 여전히 많은 숭배자를 거느리고 있다. 다양한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전문화된 것도 있고 종합적인 것도 있다)에서 그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어서 ‘가르델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그는 항상 현존한 것과 같은 상태이며, 전 지구적인 무형문화재의 참된 표본이다. 그의 중요성은 34,247개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마이크로소프트 검색 엔진에 의함)로서 입증된다.
국가 : 우루과이(Uruguay)
소장 및 관리기관 : 오라시오 로리엔테(Horacio Loriente)
등재연도 : 2003년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이 컬렉션은 가르델이라는 가수의 국제적 명성 때문에 중요하다. 가르델을 연구한 전문가 보리스 푸하(Boris Puga)는 “뛰어난 가수이자 훌륭한 작곡가였던 카를로스 가르델의 명성은 세월이 흐르면서 남아메리카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고 했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주요 음악 장르는 라플라타 강 양 기슭의 항구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에서 동시에 똑같은 이유로, 그리고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발전했다. 또 노래를 통해 탱고를 전 세계로 전파시킬 만큼 가르델이 보여준 영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 가르델이 성공을 거두자 그의 생존 당시에는 파리·부에노스아이레스·몬테비데오에서 탱고 학원이 생겨났다. 오늘날 그 학원들은 아메리카 대륙 전역, 거의 모든 유럽 국가, 그리고 멀리 일본과 하와이 등 전 세계까지 전해져 남아 있다. 그리고 가르델을 다룬 34,247개 웹사이트가 있으며(MSN 검색엔진) 그 가운데 3,295개 사이트에서는 그의 노래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는 그의 국제적인 명성을 확인해주는 증거이다.
탱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의 독특한 목소리는 춤곡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냈다. 초기에 탱고는 두 사람의 무용수가 당시로서는 음란하게 보이는 동작을 했기 때문에 저속하다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탱고는 처음에는 항구나 교외의 평판이 좋지 않은 술집에서 남자들끼리만 추거나 기껏해야 사창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여자들’과 추는 데 지나지 않았다.
가르델은 두 옥타브에 걸친 자연스러운 바리톤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를 여행하면서 만난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가 그에게 말했다시피 그의 목소리는 오페라에 적합했다.
가르델은 신체적으로 가슴·후두·성대가 훌륭하게 결합되어 있었는데, 그와 같은 사람은 20세기에 엔리코 카루소,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 등이 고작이었다. 가르델은 다른 가수들에게는 아주 힘든 고음도 힘들이지 않고 쉽게 낼 수 있었다. 음향 기술자들은 그의 노래 가운데 일부의 곡에서는 아직도 ‘그가 숨을 쉬는’ 순간이 어디인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가르델 특유의 음 지속법과 가창 때문인데 그는 고음과 저음을 아주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
1933년 가르델이 특이한 개가를 올린 것은 자신과의 이중창을 취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1934년 3월 5일 그는 동시 송수신 방식으로 음반을 취입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즉, 가르델이 미국의 스튜디오에서 헤드폰을 착용한 채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세 명의 기타 연주자들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라디오 스플렌디드(Radio Splendid)를 통해 헤드폰을 쓴 채 그의 노래에 맞춰 반주했던 것이다.
넬슨 바야르도(Nelson Bayardo)의 책 『역사로 보는 카를로스 가르델(Carlose Gardel, A la luz de la historia)』(푼다시온 방크보스턴, 몬테비데오, 2000)에는 1933년 말에 가르델이 뉴욕에서 멋진 계약을 체결했다고 쓰여 있다.
“1934년의 첫 3개월 동안 그 라디오 프로그램(그는 여기에 1주일에 3회 출연했다)은 특히 뉴욕에 거주하는 50만 명의 남아메리카인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더욱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독특한 목소리에 매력을 느낀 미국의 애청자들도 급증했다. 가르델은 이 라디오 프로그램 시리즈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 앨 졸슨(Al Jolson, 1886~1950), 빙 크로스비(Bing Crosby, 1903~1977), 에디 캔터(Eddie Cantor, 1892~1964) 등과 함께 참가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를로스 가르델 음반 원판 ‘오라시오 로리엔테 컬렉션’(1913~1935) [Original records of Carlos Gardel – Horacio Loriente Collection (1913-1935)]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백두대간^^........白頭大幹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