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그 좋은 기회를 놓친 총각

eorks 2019. 9. 18. 00:05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6부 그들의 행동, 정말 어리석었다.
[제6ㅡ17화]그 좋은 기회를 놓친 총각
한 시골 총각이 이웃집에 있는 여종을 흠모하여 늘 연정을 품 고 있었지만, 서로 만나 애정을 호소할 기회가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이 총각이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한 짐 해 짊어지고 돌아오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그래서 얼 른 큰 나무 밑에 나뭇짐을 벗어 기대 놓고, 비를 피하기 위해 바 위 밑 굴속으로 들어갔다.

총각이 젖은 옷을 털털 털고는 바깥을 내다보고 앉아 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 옷자락을 잡아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총각은 처음 바위 밑으로 들어올 때 비를 피하기에 급급하여 굴 안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고, 또 들어와서도 밖을 내다보고 앉 아 있었기 때문에, 어두운 굴속 안쪽에 사람이 미리 들어와 있는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누가 옷자락을 잡아끄는 것 같아서 돌아보니, 이게 웬 일인가? 평소에 자기가 흠모하고 있던 이웃집의 그 여종이 나물 광주리를 옆에 끼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각은 그 여종 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여우가 여자로 둔갑한 요매(妖魅)라고 생각하여 깜짝 놀랐다. 평소 이 산길에는 늙은 여우가 여자로 둔 갑해 사람을 홀린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총각은 틀림없이 여우일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총각은 곧 손을 뿌리치면서,

"이 요사스러운 여우야, 나를 유혹하지 말라."

하고는 크게 소리치며 몸을 도사렸다. 그리고는 무서워 잔뜩 몸 을 웅크리고 앉아, 어쩔 줄을 모르고 벌벌 떨고 있었다.

여종은 평소에 이 총각이 자신을 흠모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매우 기뻐서 옷자락을 끌어당겼는데, 총각의 지금 행 동이 너무나 의외여서 다시 옷깃을 당기면서 말했다.

"도련님이 평소에 나를 좋아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데, 오늘 은 왜 이래요? 너무 이상하네, 이웃집에 사는 나요, 나."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총각은 다시 손을 뿌리치며 몸을 웅크리고는, 오줌을 누어 소 맷자락에 소변을 묻혀 눈을 닦고 다시 보면서,

"너 여우야, 아직 나가지 않고 여기에 있느냐? 나는 안 속는 다!"
하고 꾸짖었다.

이러는 동안에 소나기는 개었고, 여종은 부끄러워하면서 광 주리를 들고 먼저 굴에서 나와 걸어갔다. 총각이 나뭇짐을 지고 그 뒤를 따라가면서, 왜 여우가 산속으로 가지 않고 마을 쪽으로 가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까지 다 온 여종은 총각을 한 번 돌아보면서 씩 웃 고는, 이웃집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다.

총각은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가 흠모하고 있던 여종을 여우 로 잘못 알고,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후 회하면서, 집 뒤 언덕에 올라 하루 종일 땅을 치고 울었다. <조서 후기>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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