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관장의 건망증

eorks 2019. 9. 19. 04:48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6부 그들의 행동, 정말 어리석었다.
[제6ㅡ18화]관장의 건망증
한 고을 관장이 건망증이 매우 심해 금방 들은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고을에는 배씨(裵氏) 성을 가진 좌수(座首)가 있어서, 매일 관청에 들어와서는 관장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배 좌수가 들어와서 관장에게 인사를 올릴 때마다 관 장은 좌수의 성씨를 기억하지 못하고 언제나 한결같이,

"좌수 성씨가 무엇이었더라, 내 또 좌수 성씨를 잊었네."

하며 묻는 것이었다. 그러면 배 좌수는 늘 같은 말로 이렇게 일 러 주었다,

"예, 성주(城主) 어른! 소인 성은 배가입니다."

이와 같이 날마다 되풀이하니, 배 좌수는 관장이 매일 자기의 성씨를 묻는 것이 민망하여, 하루는 관장 앞에 엎드려 다음과 같 이 아뢰었다.

"성주(城主) 어른께서는 밤새 소인의 성을 잊으시고 매일 물 으시는데, 소인 성이 과일인 배[梨]와 음이 같습니다. 오늘부터 는 벽에 배 그림을 하나 그려 놓으시고 그것을 보시면, 아마도 쉽게 기억하실 수가 있으?것입니다ㅣ. 그렇게 하소서."

이 말에 관장 참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며 직접 붓을 가지고 벽에다 배 그림을 하나 그려 놓았는데, 관장의 그림 솜씨가 서툴 러서 배 꼭지가 너무 길게 그려졌다.

이튼날 좌수가 관장에게 들어가 인사하니, 관장은 벽에 그려 놓은 그림과 좌수를 번갈아 보면서,

"좌수 성씨가 `몽둥이'였던가? 몽둥이 좌수 맞지?"

하고 물었다. 벽에 배를 그리면서 꼭지를 길게 그려, 그 꼭지가 마치 몽둥이 자루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말을 들은 좌수는 웃음을 터뜨리고 이렇게 아뢰었다.

"죄송합니다, 성주 어른! 소인 성은 `배'이지 `몽둥이'가 아닙 니다. 성주 어른께서 벽에 있는 그림을 잘못 보셨습니다. 길게 그려진 것은 몽둥이 자루가 아니라 배 꼭지입니다."

관장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그렇지, 내가 몽둥이로 해석한 것은 배 꼭지를 너무 길게 그 려서 그랬구먼. 배 꼭지가 너무 길어."

"예, 성주 어른! 그러하오니 배 꼭지를 좀 짧게 자르소서."

좌수의 간청에 따라 관장은 그림 앞으로 가서 칼로 긁어 꼭지 를 모두 잘라 버리고 둥그런 몸체만 남겨 놓았다. 그래 놓고 앉 아 쳐다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꼭지를 너무 많이 잘랐구나, 꼭지가 없어도 몸체가 있으니 다시 또 잊지는 않겠지?"

이 일에 대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비꼬았다.

"좌수가 그 관장의 건망증 때문에 배 그림을 그려 놓게 했고, 다시 꼭지를 잘라 둥굴게 만들어 놓았으니, 다음날은 수박이나 오리알, 또는 계란으로 착각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되네." <조선 중기>


......^^백두대간^^........白頭大幹

'조선왕조 때 유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님 접대하는 관장  (0) 2019.09.21
벽에 홍합 그린 관장  (0) 2019.09.20
그 좋은 기회를 놓친 총각  (0) 2019.09.18
기생을 여우로 착각  (0) 2019.09.17
자기 처를 잊어버린 사람(忘妻者)  (0) 201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