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인색한 고비(高蜚)의 행동

eorks 2019. 10. 5. 00:04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김현룡지음]

제6부 그들의 행동, 정말 어리석었다.
[제6ㅡ34화]인색한 고비(高蜚)의 행동
고비는 충주 사람으로서 장사를 해 큰 부자가 되었는데, 부자 가 된 뒤에도 너무나 인색한 행동을 했다. 집안의 모든 양식과 돈을 창고에 넣어 숨기고, 자신이 직접 창고 자물쇠를 잠그고는 그 열쇠를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아내와 첩이 있었는데, 매일매 일 먹을 것을 직접 계산해 내어 주고는 조금도 여유 있게 주지 않았다.

하루는 고비가 먼 곳에 가서 며칠 지나야 돌아오게 되어 있었 다. 그래서 돌아올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한 다음, 그때까지 아내 와 첩이 먹을 양식만 내놓고 나머지는 모두 창고에 넣어 단단히 잠갔다.

고비가 옷을 입고 집을 나서면서 둘러보니, 밀가루 몇 되가 창고 속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그대로 있었다. 깜짝 놀란 고비는 이렇게 걱정했다.

"갈 길이 촉박하여 이 밀가루를 창고에 갖다 넣고 잠글 시간 이 없으니 어떻게 한담?"

이러다가 고비는 문득 한 꾀가 생각난 듯 함지 속 밀가루를 손으로 문질러 평평하게 고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밀가루 표 면에 자기의 얼굴을 대고 눌러 도장을 찍듯이 해서 얼굴 모습의 무늬가 생기게 해놓고 아내와 첩에게 말했다.

"내가 계산해 준 양식만 먹고 이 밀가루는 손대면 안 되네, 손을 대어 내 얼굴 무늬가 지워지거나 달라져 있으면 자네들 을 가만두지 않겠네."

이렇게 단단히 주의를 시키고 떠났다. 그런데 고비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큰비가 내려 홍수가 났다.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를 못하고 주점에 갇히어 여러 날을 지체하게 되니, 본래 돌아올 날을 계산해 아내와 첩에게 양식을 주어 놓은 것이 큰 차 질을 가져왔다. 집에서는 남편이 정해진 날짜에 돌아오지 못하 니, 한정된 양식이 다 떨어져서 아내와 첩은 며칠 동안 굶으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고대했다.

여러 날 굶어 지친 아내가 첩을 보고 하소연했다.

"이보게! 어차피 배가 고파 죽으나 남편의 매를 맞아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차라리 저 밀가루로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먹고 처분을 기다리는 편이 굶어 죽는 것보다야 백 번 낫지 않겠는가?"

이러고는 밀가루를 절반만 덜어 내어 수제비국을 끓여 먹었 다. 그런 다음에 남은 절반을 아내가 손바닥으로 문질러 남편이 해놓았던 것처럼 평평하게 표면을 다듬었다.

그래 놓고 아내는 아랫도리를 벗더니 팔과 다리로 버티면서 그 밀가루 그릇 위에 엎드렸다. 마치 남편이 밤에 잠자리할 때 자기의 벗은 몸 위에 엎드리는 것처럼, 밀가루 그릇이 자기 사타 구니 아래에 오도록 자세를 취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허리에 힘을 주어 자기 음부를 밀가루 표면에 갖다 대고 힘껏 눌러 도장을 찍듯이 했다.

이렇게 하고 일어나 보니 밀가루 표면에 그 도장이 정확하게 찍혔는데, 남편이 본래 찍어 놓았던 얼굴 도장 모습과 비슷했다. 수염이며 입술 모양이며 코 모양까지 매우 흡사하게 잘 찍혔다.

여행에서 돌아온 고비가 맨 먼저 밀가루 그릇이 놓인 곳으로 달려가, 밀가루 표면을 자세히 조사해 보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면서 말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아니야, 내 얼굴의 여러 부분들이 모두 그 대로 찍혀 있기는 한데, 내 수염이 어찌하여 이렇게 지나치게 꼬 불꼬불하며, 또 내 코가 입술 위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 코가 두 입술 속으로 들어갔단 말인가?"

이렇게 의심을 하고 아내와 첩을 끌고 와 몽둥이로 때렸다.

그러고, 덧없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고비가 늙은 후에 재산 형성의 전문가로 널리 소문이 나니,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부자가 되는 비결을 좀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면서 돌아가지 않 았다.

그러다 고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어느 날 몇 시에 저 높은 성곽 위로 모두 모이면 내 부자 되 는 비결을 일러 주리라."

약속한 날, 성곽 위에는 많은 사람이 모였다. 고비는 그 중에 서 한 사람을 번쩍 들어 성곽 절벽 밖으로 뻗은 소나무 가지에 손을 잡고 매달리게 한 다음, 한쪽 손을 놓으라고 했다. 이처럼 사람을 절벽 위에 한 손으로 매달리게 하고는 고비가 말했다.

"여러분! 재산 지키기를 이 사람이 소나무 가지 잡고 있는 손 과 같이 하시오. 이 손을 놓으면 떨어져 죽습니다."

고비는 이 말만 남기고 내려가 버렸다.<조선 중기>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