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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인도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197)

eorks 2019. 12. 17. 00:47

세계기록유산 /인도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
[TARIKH-E-KHANDAN-E-TIMURIYAH]

A page from the Text

Akbar shooting deer

Authenticity of the manuscript

Battle Scene (Timur Nama), 16th Century

Battle-scene by Basawan and Ali s/o Mukhlis

Mughal forces storming a fort

Presents being received at the Court


국가 : 인도(India)
소장 및 관리기관 : 쿠다 바크슈(Khuda Bakhsh) 동양공공도서관
등재연도 : 2011년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Tarikh-e-Khandan-e-Timuriyah)」는 티무르(Timur)와 무굴(Mughal)의 지배자 바부르(Babur, 1483~1531)·후마윤(Humayun, 1508~1556)·아크바르(Akbar, 1542~1605) 등을 비롯한 이란과 인도를 다스린 티무르 가의 후예들에 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풍부한 도해가 곁들여진 현존하는 유일한 필사본이며, 아크바르 재위 22년째(1577~1578)에 제작되었다.

이 필사본은 인도 정부 문화부 산하의 독립기관인 파트나 쿠다 바크슈 동양공공도서관(Khuda Bakhsh Oriental Public Library, Patna)에서 가장 값진 소장품 가운데 하나이다. 텍스트에는 필사본의 편찬자와 원제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전의 소유자 가운데 한 사람은 필사본의 제목을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라고 언급한 바 있다. 중앙아시아의 위대한 지배자이자 정복자였던 티무르 가의 역사가 이 필사본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정확한 제목이다.

그 텍스트는 일차적으로 아불 파즐(Abul Fazl, ?~1602)에게 주기 위한 기본적인 참고 자료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불 파즐은 당시 아크바르 재위 연간의 정사 『아크바르나마(Akbar Namah, ‘아크바르 대제 치세기’라는 뜻)』를 편찬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에는 아크바르 조상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텍스트를 흔히 『티무르 나마(Timur Namah)』라고 한다. 2006년 이것은 인도 정부 문화부에 의해 인도의 필사본 보물로 지정되었다.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는 이란과 인도를 지배했던 티무르 왕조, 즉 티무르와 그의 후손들의 역사이다. 도해가 많이 들어간 이 필사본은 무굴 제국의 위대한 황제이자 티무르의 후손인 잘랄루딘 모함마드 아크바르(Jalaluddin Mohammad Akbar)의 재위 22년째인 1577년~1578년에 작성 및 제작되었다. 여러 사람이 작업한 것이기 때문에 필사본의 저자와 글씨를 쓴 사람은 당시의 여러 궁중 역사가와 필경사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무굴 제국에서 제작된 도해를 곁들인 대부분의 필사본에 해당된다. 이것은 진본이며 왕실 보존용임을 입증하기 위해 황제 자한(Shah Jahan, 1592~1666)은 친필로 이 필사본이 ‘황제 바바(Shah Baba)’(황제 자한이 할아버지 아크바르를 다정하게 불렀던 호칭)의 재위 연간에 작성되었음을 필사본의 서두에 간략하게 기록했다. 또 무굴 제국 귀족들의 기록이나 인장도 있어 진본임을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두가 갑자기 시작되고 재위 19년에 있었던 구자라트(Gujarat) 제2차 원정의 사건에서 끝나는 등 앞뒤가 불완전하다. 따라서 재위 22년에 완성된 것을 감안하면 중간의 3년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크바르의 공식 전기 작가였던 아불 파즐은 제작 지시에 따라 아크바르 황제의 생애와 통치를 기술한 가장 중요한 폐르시아 필사본 9편을 만들었다. 바로 『아인 이 아크바리(Ain-i-Akbari)』에 의해 보완된 『아크바르 나마』를 만든 것이다. 『아크바르 나마』가 아크바르 재위 연간의 기록이 분명한 반면, 『아인 이 아크바리』는 사실상 아크바르 치하의 무굴 왕조에 관한 색인이다. 아불 파즐의 필사본 가운데 8편은 확인되었지만 아홉째 필사본 『칭기즈 나마(Chingiz Namah)』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티무르 왕조의 역사인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가 바로 그 『칭기즈 나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아크바르가 제작 지시한 중요한 필사본들 중 아불 파즐의 목록 가운데 아직 확인되지 않은 아홉째 필사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필사본은 채식 도해의 수도 많을 뿐 아니라 그 화려함도 놀라울 정도이다. 채식된 도해는 모두 아크바르가 후원했던 제국의 아틀리에에서 주요 화가들이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섬세하고 매우 세련된 양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채식화의 일부에는 화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스완트(Daswant)·미스킨(Miskin)·마도 무쿤드(Madho Mukund)·하이다르 카슈미리(Haidar Kashmiri)·미스켄(Miskeen)·마노하르(Manohar)·바사완(Basawan) 등 당대의 대표적인 화가를 비롯한 총 51명의 화가가 언급되어 있다. 화가들 대부분은 아크바르의 궁정에서 활약한 유명 화가로서 아불 파즐의 필사본 작업에 함께 했다. 필사본에 들어 있는 133점의 도해 가운데 일부는 한 사람 이상의 화가가 작업한 것이다. 여러 세대 정복자와 통치자의 연대기라는 점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도해에는 포위 작전과 전투에 관한 주제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 필사본에는 채색되고 금색으로 그어진 테두리 장식 안쪽에 아름답고 굵은 나스타리크(nastaleeq, 15~16세기 페르시아 주요 서체) 서체의 글이 적혀 있다. 종이는 은은한 상아색 광택을 띤 선명한 크림색의 고급 종이이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
인도의 무굴 제국(1526~1858)은 튀르크인 정복자 티무르의 후예인 바부르에 의해 건설되었다. 무굴 제국은 인도와 세계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점성술·천문학·의학·미술·건축·회화·문학 등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이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무굴 제국은 미술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부르 황제는 채식된 필사본을 수집했으며, 아들인 후마윤 황제는 페르시아의 화가를 데리고 왔다. 한편 아크바르 황제는 많은 장서를 수집했고, 100명 이상의 화가를 지원하여 페르시아의 고전, 힌두인의 서사시와 역사에 대한 도해를 그리게 했다. 이들 도해는 멋진 옷을 입은 우아한 사람이 가득 차 있고, 꽃과 건축물의 세부 묘사가 뛰어난 보석과 같은 장면들이었다. 회화의 기법이 아크바르 시대에 절정에 이르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4권으로 이루어지고 각 권에 100점의 회화가 들어간 대작 『함자나마(Hamzanama)』는 전 세계에 걸쳐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동시대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적어도 50명의 화가들을 비롯해 총 100명 가까운 사람이 작업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와 비교해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의 회화 133점에는 51명이라는 화가가 참여했다. 이것은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에 수록된 회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의 회화는 역사 속에서 무굴 제국의 높은 문화 수준을 과시하는 고유한 사례이다. 이들은 고유하며 대체 불가능하다. 인도에 보존되어 있는 도해가 그려진 역사 기록 가운데 이 기록 유산의 풍부함에 맞설만한 것은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리크 에 칸단 에 티무리야 [TARIKH-E-KHANDAN-E-TIMURIYAH]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기록유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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