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형유산 /이란 /나칼리, 이란의 구연(口演) 극예술
[Naqqāli, Iranian dramatic story-telling]요약 : 나칼리(Naqqāli)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가장 오래된 극 연행 형태로, 궁정에서부터 마을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나칼(Naqqāl)’이라고 불리는 나칼리의 연행자는 이야기를 운문이나 산문 형태로 구술하고 몸짓이나 동작으로 표현하거나, 때로는 악기 연주나 채색된 두루마리 소품을 이용해 연행한다. 나칼은 예능인인 동시에 페르시아 문학과 문화의 전수자이며, 지역의 문화적 표현과 언어·방언·전통 음악에 정통해야 한다.
나칼리를 익히기 위해서는 상당한 재능과 기억력, 그리고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즉흥적인 재주가 있어야 한다. 나칼은 단순한 의상을 입지만, 전투 장면을 연상시키기 위해서 연행 중에 고대 투구나 갑옷을 입기도 한다. 여성 나칼은 남녀 모두를 대상으로 연행할 수 있다. 최근까지 나칼은 민속 설화, 민족 서사시, 그리고 이란의 민속 음악을 보전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나칼리는 이전에는 커피하우스, 유목민의 천막, 가정집, 또는 옛 캐러밴 쉼터와 같은 역사적 장소에서 연행되었다. 그러나 커피하우스의 인기가 시들고 새로운 오락 거리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나칼리 연행에 관심이 없어졌다. 구연 극예술의 대가인 모르셰드(morshed)들은 연로해지고, 나칼리는 젊은 세대들로부터 인기를 잃고, 능숙한 나칼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칼리의 보전은 위험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나칼리, 이란의 구연(口演) 극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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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칼리, 이란의 구연(口演) 극예술
국가 : 이란(Iran (Islamic Republic of))
등재연도 : 2011년
지역정보 :
나칼리 연행자의 대부분은 촌락이나 외딴 마을에 거주하며, 그 중 일부는 테헤란(Tehran)·쉬라즈(Shiraz)·마샤드(Mashad)·이스파한(Isfahan) 등의 대도시에 거주한다. 연행자는 소수이지만, 이란 전역에 퍼져 있다.
본문 :
나칼리는 고대 이란에서 유래한 이란의 전통적인 극 양식이다. 나칼리는 역사 속 이야기 또는 허구를 다양한 장르를 동원하여 구술 연행하는 것을 말한다. 나칼리의 내용은 운문이나 산문 형태이며, 나칼은 연행 내용이나 방식에 어울리는 몸짓이나 동작으로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나칼리는 이란의 오랜 전통을 지닌 예술이다. 이 전통을 파르티아(Parthia,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시대에는 ‘고우산(Gowsān, 낭송가)’이라고 불렸다. 고우산은 왕과 백성들에게 하나의 여흥이었다. 사산조(Sassan, 3세기~7세기) 동안 나칼리는 궁정에서 존중받았으며, ‘조냐가리(Xonyāgari)’라고 불렸다. 사산조의 붕괴 이후에 이러한 구연 연행자는 외딴 곳으로 이주하여 전통을 지켰다. 고대에는 이들이 이야기 형식의 시를 구송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렀다.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구연 극예술 양식인 나칼리는 역사적으로 사회정치적 환경에 적응해 왔다. 사산조(651년) 이전에 나칼은 시인이자 음악가였다. 이들은 이야기를 구송하며 악기를 연주하였다. 바르바드(Bārbad, Barbād/ḏ)는 사산조에서 가장 유명한 나칼이었다. 가즈나(Ghazna) 왕조(10세기~12세기) 시기에는 궁정에서 음악을 하는 나칼의 활동을 금지하였다 그래서 나칼은 외지에서 전통을 지속했다. 사파비(Safavi) 왕조(16세기~18세기) 시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커피하우스가 생겨난 것이고, 두 번째는 ‘파르데(Parde)’라는 두루마리 장막을 연행에 이용한 것이다.
파르데의 사용은 나칼리에 새로운 연행 형태가 되었고, 커피하우스는 300년 동안 나칼의 독점적인 연행 장소가 되었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큰 커피하우스에서는 나칼을 채용하였다. 불행하게도 서구 문명의 강력한 영향과 함께 옛 전통이 쇠퇴하면서 커피하우스의 인기도 시들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나칼은 전통적인 청중을 잃었다.
이슬람 시기에 구연 연행자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의 명칭은 구연 연행자가 전달하는 이야기에서 기원했는데 예를 들면 ‘샤흐나메 잔(Shāhnāme-Xān)’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피르다우시(Ferdowsi, 940~1020)가 쓴 뛰어난 페르시아 서사시인 〈샤흐나메(Šāhnāma, The Book of Kings)〉의 이야기를 구송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에도 이 같은 명명법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나칼은 페르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와 지역의 표현들, 이란의 전통 음악과 토속 음악에도 정통해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예능인인 동시에 페르시아 문학과 문화의 전수자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국가적인 결속을 돕는다. 오늘날 나칼이 이야기를 구연할 때 쓰는 언어는 페르시아어에 국한되지 않고 지방의 방언이나 언어도 쓰인다.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나칼은 민속 설화, 민족 서사시, 이란의 전통 음악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호자였다.
나칼리를 구연하는 데에는 상당한 재능이 필요하다. 이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취향과 뛰어난 기억력이 필요하다. 나칼은 고대와 현대의 이야기에 정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듣거나 만들어낸 새로운 사건과 연관시켜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들은 시가에서 최고로 세련된 시구들을 인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매우 좋아야 한다.
청중들은 대개 나칼이 전하는 이야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나칼은 매력적인 목소리나 청중을 사로잡는 연기로 청중을 매료시켜야 한다. 나칼은 왕·왕비·전사·왕자·거지 등의 다양한 역할을 혼자서 설득력 있게 연기해야 하고, 말발굽 소리, 칼싸움 등의 음향 효과도 능숙하게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뛰어난 나칼은 이란의 운동 경기에 대한 지식도 있어서, 레슬링이나 펜싱 등의 기술을 인용하여 연기한다.
나칼은 전업(專業) 또는 비전업(非專業)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이들은 커피하우스, 유목민의 천막, 가정집 또는 고대 캐러밴의 쉼터와 같은 역사적 장소에서 연행한다. 오늘날 전업 나칼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들은 나칼을 구연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전업 나칼은 대개 지방 정부나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공식 행사에 초빙되고, 비전업 나칼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간혹 결혼 피로연이나 장례식과 같은 지역 행사에서 연행한다. 그러나 두 그룹 모두 이란의 행사인 전통 극 축제에는 언제나 초빙되어 왔다.
대부분의 나칼은 구연할 이야기를 외우지만, ‘모르셰드’라고 불리는 대가들은 ‘투마르(Tumār)’라고 불리는 글로 쓰인 이야기 모음을 가지고 있다. 모든 모르셰드는 개인적인 투마르를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의 순서와 세부 내용은 개인마다 다르다. 투마르는 페르시아 전설을 극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이란 전통 극의 연행 방식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투마르 중에서도 나칼리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샤흐나메〉에 등장하는 전사의 이야기인 「로스탐과 소흐라브(Rostam and Sohrāb)」를 포함한 몇몇 작품이 출간되었다.
오늘날에도 ‘나칼’로 인정받으려면 초심자는 모르셰드에게 전수생으로서 훈련받아야 한다. 전수생은 선생인 모르셰드가 연행할 때 동행한다. 연행의 몇몇 부분이 끝난 후, 연행 도중에 모르셰드는 그의 메트라크(metrāq, 다양한 용도의 지팡이)를 청중과 같이 앉아 있는 전수생에게 준다. 전수생은 무대로 나아가 스승의 연행을 이어서 하며, 모르셰드가 도제 연수가 끝났다고 선언할 때까지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전수생은 여생 동안 자신의 스승을 존경하며, 스승이 함께 있을 때에는 항상 그에게 연행을 시작해도 되는지 묻는다.
나칼 중에서도 특히 모르셰드는 수도승의 복장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있다. 이들은 연행 도중에 고대 투구와 갑옷을 입기도 하는데, 이는 전투 장면을 현실감 있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이들의 다용도 지팡이는 다양한 소재를 상징하는데, 예를 들면 아름다운 연인, 말, 칼 등이다.
일부 나칼은 커피하우스 안에서 채색된 커튼(두루마리 장막)을 사용하는데, 이를 ‘파르데’라 한다. 나칼리는 논리적이고 종교적이며 전통적인 양식을 지켜왔는데, 이런 양식은 대중의 믿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번성했다. 이 커튼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화가들은 빛과 불가능한 꿈을 전하여 왔다.
나칼리의 고유한 극 연행이 이란 문화의 심오하고 순수한 면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를 지켜서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본원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명백히 중요한 일이다. 더불어 나칼리는 전 세계의 문인과 예술가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모든 형태의 예술은 일종의 특수한 언어이며, 이를 통하여 다른 문화와 평화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칼리는 긴급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세계유산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긴급보호의 필요성 :
• 존속 가능성 평가
이란의 모든 지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나칼리가 아직도 존재하지만, 나칼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현재 전업이든 비전업이든 나칼은 나칼리 연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전업으로 나칼리에 종사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칼들 중에서 특히 모르셰드는 개인적인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연행을 한다. 이들은 전통 예술의 본질적·정신적인 면에 충실한 사람들로, 예술가는 예술의 그림자일 뿐이며, 예술 그 자체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전통 예술가와 전통 예술을 왜소화시켰다. 대중매체가 공동체에 현대 예술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겸손한 전통 예술가들은 쉽게 잊히기 쉽게 때문이다. 그러나 연행에 있어서 이들의 열정은 매우 강하여 나이와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손쉽게 청중을 매료시킨다. 이러한 반응은 이란의 젊은 세대가 나칼리를 비롯한 이란 전통극에 친숙해지도록 전통예술국이 2005년에 개최한 프로그램에서 확인되었다. 연행을 처음 본 십대들이 나칼리 연행을 이해하였고, 전통예술국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오늘날 나칼리 연행 대회는 이란의 몇몇 연행가가 그들의 연행을 소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나칼리 예술의 구송 문화유산을 녹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소수의 예술가는 연행 대회에 자신들의 실험적 작품을 제출하고 싶어 한다.
당연히 이 전통은 구전으로 전승되며, 스승과 제자의 직접 상호작용으로 전수되고 있다. 2010년 현재 전업 나칼리와 비전업 나칼은 200명 미만으로 추측되며, 이중 절반은 이란 전역에 걸쳐 농촌 지역에 산다. 점차 전통적인 청중과 연행 기회를 잃음에 따라 나칼리는 젊은 세대에게서 인기를 잃고 있으며 남아 있는 나칼도 매우 연로하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젊은 세대를 위해서라도 나칼리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기에서 지적한 지정에 관련된 보호 조치를 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편 나칼리의 긍정적인 요소는, 남녀가 섞인 청중에게 연행할 수 있는 소수의 여성 연행자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 위협 및 위험 요소 평가
나칼리의 보전을 위협하는 요인은, 연행자는 나이 들어가는데 유산의 보존할 젊은 세대에 대한 전승 계획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2010년 현재 100명 이상의 나칼들이 등록되었으나,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실제는 더 많을 것이다. 등록된 나칼 중에서 90% 이상이 60세 이상이다. 따라서 구전 문화유산을 녹음하거나 전승하려는 계획을 신속히 수립해야 한다. 모르셰드 토르비(Torabi)와 모르셰드 미르자 알리(Mirza Ali) 등의 일부 모르셰드는 전통적인 구전 방식으로 전수생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다른 모르셰드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
현대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나칼리를 포함한 전통 연행을 보는 청중이 줄어들고 있는 점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로써 나칼리 연행은 전통적인 청중인 서민으로부터 소외되어 갔고 오늘날에는 지식인과 교양 있는 예술가만이 나칼리 연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나칼리를 비롯한 이란의 전통극에 장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이 예술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칼리 연행을 위한 특정한 연행 장소도 없다. 커피하우스의 내부 구조 조차도 나칼리의 연행보다는 텔레비전을 틀어놓기에 적합하게 변경되었다.
연행 횟수도 줄어듦에 따라 나칼의 연행 기회도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나칼리의 모든 구전 문학이 기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연행 전통을 적절하게 보존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훈련 과정이다. 나칼리의 전통적인 훈련 방법은 보전되어야 한다. 이 전통적인 방법의 일부는 17세기에 발간된 『포토바트 나메 예 솔타니(Fotovat-nāme-ye Soltāni)』에 소개되었다. 이 방법의 핵심은 단순히 가르치거나 기예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수생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나칼리 예술의 고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신적인 훈련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모르셰드가 지식을 올바르게 전수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반면에 나칼리를 전수하는 방법은 주로 구전에 의존하는데, 이 분야를 응용한 교과서가 조금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나칼리 교육 방식의 다양한 요소를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약하면, 이란 전통극의 조상이라고 할 만한 나칼리를 연행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문화유산은 유실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란 정부와 비정부 기구, 그리고 개인이 이 전통의 고유한 양식을 보전하기 위한 긴급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가능한 신속하게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칼리, 이란의 구연(口演) 극예술 [Naqqāli, Iranian dramatic story-telling]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영/불어 원문))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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