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포르투갈 /기마랑이스 역사지구(484)

eorks 2020. 10. 9. 06:26

세계문화유산 /포르투갈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Historic Centre of Guimarães]
요약 : 기마랑이스(Guimarães) 역사지구는 12세기 포르투갈의 국가 정체성 확립과 관계가 있다. 중세도시에서 현대도시로 발전한 진정한 모습을 예외적으로 잘 보존한 곳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포르투갈의 건축 양식 발전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많으며, 건물들은 전통적인 건축 자재와 기법을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국가 : 포르투갈(Portugal)
    위치 : 미뉴(Minho) 주, 브라가(Braga) 지역
    좌표 : N41 26 26.988,W8 17 41.352
    등재연도 : 2001년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
    기마랑이스의 초기 역사는 12세기 포르투갈 국가의 정체성 확립, 그리고 포르투갈 언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마랑이스의 특별한 중요성은 이 지역에서 발달시켜 온 남다른 건축 기법에서 나온다. 또한 중세시대 아프리카와 신대륙에 있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에 이 기법을 전파하였다. 기마랑이스는 잘 보존된 도시로, 특히 15세기~19세기에 중세의 주거지가 현대 도시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특이한 건물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기마랑이스는 바다를 향해 곧게 뻗은 비옥한 평야 지대에 있다. 이곳은 몬사우(Monçao), 브라가(Braga)와 비세우(Viseu), 10세기 포르투갈 백작 령인 카미냐(Caminha) 사이를 잇는 중세의 가장 중요한 교역로이다. 이 도시의 주거지는 두 세력이 양분하면서 발달하였는데, 남쪽 계곡의 수도원과 북쪽 언덕의 요새이다. 이들은 2개의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후에 한 구역으로 통합되었다.

    이 역사지구는 950년~1498년까지 아주 많은 석조 건물로 형성되었다. 귀족의 저택이나 공공시설, 도시의 광장 등이 르네상스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절충주의(折衷主義), 산업화 시기, 그리고 1926년부터 지금까지 현대 기술이 팽창하면서 도시에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이곳은 여전히 중세 도시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구조와 건물 유형은 시간에 따라 발전하였다.

    주거용 주택에 사용된 건축 기법은 주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16세기 이전 양식(로디지오 양식, rodízio)은 점토 회반죽을 바른 반(半) 목재 구조물인데, 햇볕에 말린 벽돌을 채워 넣고 목재와 화강암을 이용하여 만드는 형태이다. 두 번째 양식은 파스키오(fasquio) 양식은 주로 19세기와 지금도 사용되는 방법으로 전체가 목재 구조물이다. 이 건축 기술은 여기에서 전 세계의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갔다.

    중세의 성을 포함한 기념물은 10세기 최초의 요새 안에 지었다. 오늘날의 건축물은 돌로 지었으며, 아폰수 1세(Afonso I) 때 시공하여 이후 수세기 동안 여러 차례 변형되었다. 건물은 방어를 위해 탑에 총안(銃眼)을 설치한 수수한 구조이다. 일부가 18세기에 파손되었다가 이후 재건되었다. 성 근처에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상 미겔(São Miguel) 성당은 19세기에 훼손되어 1920년대에 복원되었다.

    올리베이라 성모(Nossa Senhora da Oliveira) 성당은 12세기에 지었는데, 3세기 전 최초의 수도원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웠다. 1387년에서 1413년에 걸쳐 포르투갈 고딕 양식에 따라 세 개의 신도석과 나무 지붕이 있는 구조로 완전히 개조하였다. 회랑은 16세기에 덧붙였고, 17세기에는 교회 건물에 현재의 성소를 지었다.

    브라간사의 공작(Dukes of Bragança) 궁전은 돌로 만든 대규모 복합 건물이다. 1420년~1422년에 축조된 최초의 건축물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축물은 브라간사(Bragança) 가문의 자부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데, 19세기 후반에 군사 본부로 쓰이면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노사 세뇨라(Nossa Senhora) 성당 정면에 있는 시청사는 16~17세기 양식이며, 정사각형 모양이다.

    돌을 주재료로 하여 지은 왕궁은 주요 층이 한 개가 있고, 커다란 문이 여러 개 달려 있다. 이 문은 본관 파사드(facade)를 따라 늘어선 발코니로 연결되어 있다. 1층은 개방형 회랑이 특징이다. 성당 앞에는 파드랑 두 살라도(Padrão do Salado) 전투에서 승리한 동 아폰수 4세(Dom Afonso Ⅳ)의 승전을 기념하는 14세기 고딕 양식의 아치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16세기 중산층 저택들은 1층은 화강암으로 처리하고 위층은 로디지오 양식으로 반 목재 구조이다. 귀족들의 저택은 주로 기존 건축물을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고, 뚜렷하게 차별화하려고 화강암으로 입체감을 주었다. 17세기 전형적인 주택은 동일한 기법이 반복되었다(대개 3층 구조인데 1층은 화강암으로 짓고 위층은 반 목재 기법이다). 동시대의 또 다른 주택 양식은 1층에 줄기둥과 회랑이 있는 양식으로, 주로 공공건물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마랑이스 역사지구 [Historic Centre of Guimarães]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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