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수단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628)

eorks 2021. 3. 2. 08:01

세계문화유산 /수단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Archaeological Sites of the Island of Meroe]
요약 : 메로에(Meroe) 유적은 나일 강과 앗바라(Atbara) 강 사이의 반사막(semi-desert) 지역에 있으며, 기원전 8세기경부터 서기 4세기까지 번영했던 쿠시(Kush)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 유적은 메로에에 있는 쿠시트(Kushite) 왕들의 왕실 도시였으며, 나일 강 근처에 있다. 이곳에는 종교적인 유적인 나가(Naga)와 무사와라 에 수프라(Musawwarat es Sufra)가 있다. 백 여 년 간 이집트를 다스린 통치자가 있던 곳으로, 피라미드, 신전, 지역 건물, 물 관리와 관련된 주요 시설이 있었다. 강력한 쿠시 제국은 지중해에서 아프리카 중심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고, 두 지역 사이에 예술, 건축, 종교, 언어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수단의 메로에 피라미드

수단의 메로에 피라미드

수단의 메로에 피라미드

수단의 메로에 피라미드

수단의 메로에 피라미드

    국가 : 수단(Sudan)
    좌표 : N16 56 00,E33 43
    등재연도 : 2011년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
    탁월한 보편적 가치
    쿠시 왕국은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고대 세계의 가장 강력한 정권이었으며, 메로에 섬은 쿠시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왕들의 주요 거주지였으며, 기원전 3세기 이후부터는 오랫동안 왕실의 무덤이 있었다. 그리고 철을 사용한 산업 활동도 이루어졌다. 나가는 기원전 마지막 세기부터 서기 초기 몇 세기까지 이 지역의 고대 기후와 수문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나가와 무사와라 에 수프라는 종교 유적인데, 건조한 환경에서 어떻게 기능을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거대한 저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개의 유적은 쿠시 왕국의 유물이며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이 유적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건축 기법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쿠시 왕국의 부와 힘을 말해 주며, 지중해 지역과 중동 지역이 광범위하게 접촉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곳은 고대 파라오 세계와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주변 지역인 사헬지대(Sahelian Africa)의 접촉지이다.

    메로에의 피라미드, 무사와라 에 수프라, 나가 등과 같은 유적은 반사막 지역에 있다. 반면에 메로에 마을 유적은 강변에 있다. 무사와라 에 수프라 신전과 나가 신전, 메로에의 피라미드는 적갈색 산 옆에 서 있으며 그 자체는 초록색 수풀로 덮여 있어 색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나일 강 강둑에서 30㎞ 이상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므로 경관이 상당히 멋있다. 이 유적 주변에는 전통 마을이 있는데 현재 사람이 살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이 세 군데의 유산은 피라미드, 신전, 궁전 및 전통적인 건축물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중북부 나일 강 계곡에서 1,000년 이상(기원전 8세기~서기 4세기) 번영했던 쿠시 왕국의 정치, 종교, 사회, 예술, 기술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완전성과 진정성
    메로에 마을의 유적, 남북 묘지들, 무사와라 에 수프라와 나가 지역 세 곳에 대한 유산의 완전성과 진정성은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 내세우는 조건과 일치한다. 이 유산들은 방치된 후 크게 훼손되지 않았으며, 주위 경관에서 봤을 때 가치가 크게 떨어지거나 나빠지지 않았다. 1830년대에 페르리니(Ferlini)가 이곳에서 보물을 찾으며 메로에 묘지에 있는 피라미드의 일부를 파손했지만 전반적인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복원 사업을 조금 진행했는데, 특히 나가에 있는 피라미드와 왕실 목욕탕, 오두막과 같은 몇몇 건물에 대해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복원 사업에 사용한 소재와 기술은,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보존 원칙과 일치하지 않으며 복원 사업 이후 관련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베니스 협약(1954), 나라 문서(Nara document, 1995)의 수칙들과 아나스티로시스(Anastylosis, 떨어진 부분을 사용한 유산 복원)의 원칙을 크게 위반하지는 않았다. 또한 고대 유물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두세 개의 작은 피라미드를 완벽하게 재건했다.

    보존 및 관리체계
    유산은 고대 유물 보존 조례(Antiquities Protection Ordinance)에 의거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조례는 1905년에 만들어지고 1952년에 수정되었다가 최근 1999년에 다시 수정되었다. 관광과 고대 유물 경찰청(Police of Tourism and Antiquities)의 군사가 이 유산들을 지키고 있으며, 거주 관리인을 선정해 여러 기술자들과 함께 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유산 관리 위원회가 생겼으며, 컨설턴트 회사가 유적의 울타리와 토대를 위해 디자인과 관리 비용도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국내외 협력자도 찾고 있다.

    등재기준
    기준 (ⅱ) : 메로에 섬에 있는 유산은 중부 아프리카와 지중해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고대 세계에서 오랫동안 아프리카로 들어오고 나갔던 중요 통로였다. 그리고 이 유산에 포함된 건축, 예술, 도상학, 종교, 언어는 섬 안팎의 지역들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기준 (ⅲ) : 서기 6세기에 나일 강 중부 지역으로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쿠시 문명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급격히 사라졌다. 등재된 유산은 다양한 형태, 잘 보존된 건축물, 미래 발굴 가능성, 다른 연구 방법 등으로 인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위대한 문명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기준 (ⅳ) : 메로에의 피라미드는 쿠시 장례 유적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도시 중심부에 보존된 유물과의 연관성은 주목할 만하다. 철기가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철기 문화가 어떻게 보급되었는지, 그리고 거기에 메로에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는 연구를 통해 풀어야 할 과제이다. 나가의 건축 기법은 이집트의 파라오, 그리스, 로마, 쿠시 자체의 것이 섞여 있으며, ‘로마의 오두막(Roman kiosk)’은 장식 기법이 잘 섞여 있고, 사자 신전(Lion Temple)에는 쿠시 신들과 왕족에 대한 조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무사와라는 신전, 정원, 토착 건물뿐만 아니라 물 관리 시설, 채석장, 공업 지역들로 서로 연결되어 건축학적으로 유일하게 전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기준 (ⅴ) : 옛날에 인간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무사와라와 나가가 현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지대로 변했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존 능력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쿠시와 사막에 있는 고원 지역 사이의 교류를 이해하면서 고대 기후와 동식물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메로에 섬의 고고 유적지 [Archaeological Sites of the Island of Meroe]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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