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柱八字와 조선시대 반란 사건(1)
조선왕조실록에서 ‘팔자’를 검색하면 많은 기사가 나오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기사들의 대부분이 반란사건과 관계 있다는 점이다. 각종 반란사건에 가담한 죄인들의 취조 과정에서 사주팔자 이야기가 많이 튀어나온다. 왜 다른 대목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다 하필이면 반란사건과 관련된 대목에서 집중적으로 팔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사주팔자는 어떤 방식으로 반란사건과 연결될 수 있었을까? 조선 초기인 단종 1년(1452)에 발생한 이용(李瑢)이란 인물의 역모 사건을 보자. 이용은 왕실의 여러 대군(大君) 가운데 하나였다. 역모사건 취조 기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맹인인 지화가 이용(李瑢)의 운수를 보고 망령되게 군왕의 운수라 하였고, 이현로(사주 전문가:필자주)가 이용에 대해 말하기를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운명이며 임금의 팔자’라고 하였다. 또한 풍수도참서(風水圖讖書)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하원갑자(下元甲子)에 ‘성인이 나와서 목멱정(木覓井)의 물을 마신다’ 운운 하였는데 서울의 백악(白岳) 북쪽이 바로 그곳이어서 참으로 왕업을 일으킬 땅이니 그곳에 살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용이 그것을 믿고 그곳에 집을 짓고 무계정사(武溪精舍)라 호칭하여 도참(圖讖)에 응하려고 하였으며, 또 여러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대군만 되고 말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맹인 지화가 주상의 팔자와 의춘군의 팔자를 비교해 점을 쳤다.”
당시 대군 가운데 한명이었던 이용이 역모를 시도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본인의 사주팔자에 대한 확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확고한 신념 없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쿠데타를 어설프게 시도할 수는 없다. 이용의 경우에는 그 신념을 형성하는 기반이 바로 자신의 사주팔자가 왕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었다. 신념의 기반은 정의감도 해당될 수 있지만 때로는 운명론도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처럼 조선시대 반란사건의 구체적 실상을 추적하다 보면 직·간접으로 사주팔자를 믿고 가담한 사례가 수십 건이나 발견된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군왕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점지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른바 왕권천수설(王權天授說)이다. 하늘의 뜻이 과연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풍수도참과 사주팔자였다. 필자가 보기에 풍수도참과 함께 사주팔자라고 하는 담론체계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역사의 정권교체 과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온 단골메뉴이자 스테디셀러였다.
조선시대 반란사건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사건이 바로 숙종 23년 승려들이 이씨왕조 전복을 시도하려 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주로 금강산에 거주하던 승려들이 주동이 되었는데, 그 배후에는 명나라가 망하자 조선으로 망명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중국인 출신 운부(雲浮)라는 인물이 있었다. 운부는 당시 나이가 70이었다. 천문·지리·인사에 통달하여 그 식견과 경륜이 제갈공명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금강산 일대의 승려들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운부는 금강산 일대의 승려들을 규합하고 황해도의 장길산 세력과 합류한 다음 정씨(鄭氏) 성을 가진 정도령을 내세워 역성혁명을 시도하였다. 운부와 장길산이 연결된 이 반란사건은 1970년대 반란사건 전공이던 영남대 정석종 교수에 의하여 연구 정리되어 그 자료가 소설가 황석영씨에게 제공되었다고 한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은 실제 있었던 이 자료를 기본 뼈대로 하여 거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인 것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씨가 쓴 소설 ‘운부’(雲浮) 역시 이 사건을 모델로 하였다.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건이었다.
조선시대 금강산은 당취들의 본부였다. 조선시대 반체제 승려 세력들의 비밀결사를 ‘당취’(黨聚)라고 부르는데, 출가 승려들이 굳이 반체제라는 결사를 조직하게 된 배경에는 이씨왕조(李氏王朝)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작용하였다. 불교를 탄압하는 억불(抑佛)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취들은 제육(돼지고기)을 씹으면서 이씨 정권을 저주하였다. 돼지고기를 씹은 이유는 이씨왕조를 창업한 이성계의 생년이 을해생(乙亥生) 즉 돼지띠였다는 데 있다.
고려 말에 ‘돼지가 나무 위로 오르는 사람이 신왕조를 세운다’는 도참이 유행하였고, 아닌 게 아니라 왕조를 세운 이성계의 생년이 을해생이었던 것이다. 을(乙)은 목(木)이고 해(亥)는 돼지를 가리키므로 을해(乙亥)는 돼지가 나무 위로 오르는 모습이기도 하다. 당취들이 돼지고기를 씹는다는 것은 돼지띠인 이성계를 저주한다는 의미다. 당취들은 또한 ‘미륵(彌勒)사상’을 신봉하였다. 미륵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이(爾) 활(弓)로 힘(力)을 길러 바꾸자(革)’는 의미로 변한다는 이야기를 10년전 당취 후예로부터 직접 들은 바 있다. 돼지고기를 질근질근 씹으면서 미륵을 신봉하던 당취들의 본부는 전국적으로 2군데 있었다.
하나는 금강산이고 다른 하나는 지리산이다. 두 산 모두 여차하면 숨기에 좋은 깊은 산이다. 역대 조선의 도인들 가운데 가장 도력이 높았던 인물들을 출신지별로 정리해 보면 금강산파와 지리산파로 압축될 정도로 금강산과 지리산은 많은 비화를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당취들이 토색질하던 악질 부자들을 잡아다 그 죄질에 따라 참회(懺悔)시킬 때도 ‘금상산 참회’와 ‘지리산 참회’가 있었다고 한다. 금강산 참회는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이고, 지리산참회는 병신 만드는 참회였다. 숙종조에 활동한 운부는 그러한 전통을 가진 금강산 당취의 총사령관이었던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이 사건의 공초 기록을 보면 운부의 생년과 운부가 새로운 왕으로 내세우려 했던 정도령의 사주팔자가 밝혀져 있다. “운부 및 이른바 정진인(鄭眞人)의 사주를 물으니, 이영창이 말하기를 ‘운부는 정묘생(丁卯生)이고, 진인(眞人)은 기사(己巳)년 무 진(戊辰)월 기사(己巳)일 무진(戊辰)시에 태어났다’고 하니, 비기(秘記)에 이르기를 ‘중국 장수인 묘생(卯生)의 사람이 중국에서 와서 팔방(八方)을 밟고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바로 운부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기사년 무진월 기사일 무진시에 태어났다면 바로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 격이다. 숭정황제(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 편집자주)의 사주에는 뱀이 변하여 용이 되는 격이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자가 되었는데, 이 사람의 경우에는 그런 격이 둘이나 있으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하였다.’(숙종 23년 1월10일 기록)
사주팔자의 사주(四柱)는 네 기둥이란 뜻이고, 팔자(八字)는 여덟 글자라는 뜻이다. 연·월·일·시를 네 기둥으로 보고, 한 기둥에 두 글자씩으로 되어 있으므로 모두 여덟 글자이다. 운부를 중심으로 한 금강산의 승려세력이 이씨왕조를 대신하여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 한 정도령은 틀림없이 보통사람이 아닌 하늘이 내린 인물이었을 것이고, 그 비범한 인물의 사주는 평범한 사람의 사주와는 다른 특별한 사주였을 것이다. 그 특별한 사주가 바로 기사·무진·기사·무진(己巳·戊辰·己巳·戊辰)이었다.
명리학을 아는 사람이 이 사주를 보면 과연 비범하다. 첫째, 연·월·일·시의 지지(地支)가 사진·사진(巳辰 ·巳辰)으로 되어 있다. 사(巳)는 뱀이고 진(辰)은 용이다. 뱀에서 용으로 변하여 뜻을 이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국 숭정황제의 사주가 이렇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조선에는 중국 황제들의 사주도 회자(膾炙)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천간(天干)을 보면 기무·기무(己戊·己戊)로 되어 있다. 기(己)와 무(戊)는 오행으로 볼 때 모두 토(土)에 속한다. 오행 가운데 토는 중앙을 상징하고, 중앙은 동서남북을 통어하는 제왕의 기능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주의 천간(天干)이 이처럼 모두 토로 이루어진 사주는 제왕의 덕을 갖추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음양오행 사상으로 인간과 우주를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표인 태극도. 반체제적 이념·성격 가진 命理學
셋째는 지지의 구성을 거꾸로 보면 진사·진사(辰巳·辰巳)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사년(辰巳年)은 조선의 술객들 사이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역성혁명가들의 이론서라 할 수 있는 ‘정감록’의 내용 가운데에는 ‘진사(辰巳)에 성인출(聖人出)’이라는 유명한 대목이 있다. 현재에도 주역이나 음양오행에 밝은 식자층들 사이에서는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는 ‘진사년(辰巳年)에 성인이 출현한다’는 예언이다. 즉 진년과 사년에 변란이 일어나 그때 새로운 지도자인 정도령이 출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백두대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