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와 점술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우리나라에서 사주팔자에 대한 최초의 공식적인 기록은 조선왕조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다. 경국대전은 세조 6년인 1460년에 편찬을 시작해 성종 16년인 1485년에 최종 완성되었으므로 조선 초기에 성립된 법전인데, 여기에 보면 전문적으로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을 국가에서 과거시험으로 선발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경국대전에 나타나 있는 과거시험 분류를 보면 중인(中人) 계급들이 응시하는 잡과(雜科)가 있다. 잡과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전문 기술직이다.
잡과 가운데 하나로 음양과(陰陽科)라는 것이 있었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전문가를 선발하는 과거가 바로 음양과다. 음양과를 다시 세분하면 천문학(天文學)·지리학(地理學)·명과학(命課學)으로 나뉘고 초시(初試)와 복시(復試) 2차에 걸쳐 시험을 보았다. 초시에서 천문학은 10명, 지리학과 명과학은 각각 4명씩 뽑았다. 복시에서는 천문학 5명, 지리학·명과학은 각각 2명씩 뽑았다고 나온다.
지리학은 풍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관료로 채용하는 과목이고, 명과학이란 사주팔자에 능통자 자를 관료로 채용하는 과목이다. 과거시험은 매년 있었던 것도 아니고 3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자·오·묘·유(子·午·卯·酉)년에 시행하는 식년시(式年試)에서 ‘명과학 교수’를 초시에서 4명, 복시에서 2명씩 채용하였다. 3년마다 시행되는 명과학 과거시험에서 최종적으로 2명만을 선발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적은 인원만을 선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명과학의 시험과목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시험과목을 보면 ‘서자평’(徐子平) ‘원천강’(袁天綱) ‘범위수’(範圍數) ‘극택통서’(剋擇通書) 등이다. 서자평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주팔자의 원리에 대한 내용이고, 원천강은 사람의 관상(觀相)을 보는 책이며, 범위수는 어느 날짜에 혼사를 하거나 건물을 짓는 공사를 시작할 것인가를 논하는 택일(擇日)에 관한 책이다.
‘극택통서’는 현재 전하지 않고 있어 어떤 책인지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고, 나머지 과목들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명과학의 시험과목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과목을 꼽는다면 서자평의 ‘연해자평’이다. 서자평은 오늘날에도 명리학을 처음 공부하려는 학인들이 필수적으로 섭렵해야 할 교과서로 평가되는 책이다.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모든 기본 원리는 서자평에 들어 있다. 아무튼 명과학의 시험과목에 서자평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주팔자의 원리는 경국대전이 성립되던 1400년대 후반까지는 조선사회에 전래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확인이고 비공식적으로는 15세기 후반 이전에 서자평의 명리학이 이미 조선사회에 유입되어 있었다고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팔자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CD롬에서 ‘팔자’라는 단어를 검색한 결과 태종 17년(1417)에도 공주의 배필을 구하기 위해 남자의 팔자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왕실에서 사주팔자를 보고 혼사를 정하는 풍습이 그때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 미루어 기록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고려말 조선 초에 서자평의 명리학이 중국으로부터 이미 들어와 있었으며, 왕실을 비롯한 일부 계층에서는 사주팔자를 통해 그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거나 혼사를 정할 때 궁합을 보는 풍습이 유행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때까지는 명리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이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 임의로 사주팔자를 보아 주었을 것이다.
그러다 아예 이것을 공식화하자 특히 왕실에서 그 필요성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왕실에서는 많은 왕자와 공주들이 출생했다. 이들을 시집·장가보낼 때는 사전에 궁합을 보는 일이 필수적인 일이었고, 궁합을 보기 위해서는 생년월일시와 같은 인적사항이 노출되어야 하는데, 그 신상정보를 외부에 함부로 공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리학 전문가를 왕실 전용 관료로 선발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던 것 같고, 결국 명과학 교수라는 직책이 과거 가운데 하나로 채택된 것 아닌가 싶다.
명과학 교수의 인원은 2~4명이다. 3년마다 돌아오는 전국 규모의 과거시험에서 이 숫자만 뽑았으니 매우 적은 인원만 채용한 셈이다. 이들은 말하자면 왕실 전용 사주 상담사들이라서 근무처도 서울의 궁궐 내에서만 근무했다. 지방에 출장간다거나 일반인들의 사주팔자를 보아 주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허가 없이는 궁궐밖 사람과의 접촉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왕실의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명과학 교수라는 직급은 잡과에 소속돼 낮은 편이었지만, 그 업무적 성격상 왕실 내부의 은밀한 정보를 접촉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직급이 낮다고 해서 함부로 볼 자리가 아니었다. 이들의 임무는 여러 가지였다. 공주나 왕자의 궁합을 보는 일, 합궁(合宮)할 때 그 날짜를 택일하는 일, 궁궐 내에서 왕자나 공주가 출생할 때 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 사주팔자를 기록하는 일. 건물 신축을 할 때 길일(吉日)을 잡는 일, 임금의 명에 따라 대신들 개개인의 사주팔자가 어떤지를 보는 일 등이었다.
이 가운데 합궁일(合宮日)을 살펴보자. 사주팔자에서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양대 요소는 입태일(入胎日)과 출태일(出胎日)이다. 입태일(入胎日)은 정자와 난자, 그러니까 부정(父精)과 모혈(母血)이 결합되는 날짜로 합궁일이 된다. 출태일(出胎日)은 그 사람이 태어난 날, 정확하게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가위로 자른 시각을 말한다. 탯줄을 자르는 바로 그 시각에 천지의 음양오행 기운이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들어온다.
사주팔자는 바로 그 탯줄을 자르는 시각에 들어온 음양오행 기운의 성분을 10간 12지로 인수분해한 것이다. 입태일은 ‘IN PUT’되는 시점이고, 출태일은 ‘OUT PUT’되는 시점이다. 문제는 출태일 못지않게 입태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료(?)를 투입할 때 과연 어느 시점에 투입하느냐에 따라 제품의 질이 결정되게 마련이다. 그 투입 시점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방정식의 핵심은 아이의 부모가 될 사람 사주를 먼저 본 다음 그 부모 사주의 약점과 강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조용헌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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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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