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조용헌 살롱](2)

eorks 2023. 8. 6. 04:32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2)
즉, 골치아픈 ‘안티’ 세력들로 간주되어 감시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비결을 신봉하는 사람치고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적었고, 항상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는 ‘운동권’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운동권의 교본이 ‘정감록’(鄭鑑錄)이다. 그래서 나는 정감록을 ‘조선시대의 해방신학’으로 규정해야 옳다고 본다. 정도령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미륵)였고, 메시아가 출현하면 민중은 부도덕한 체제의 탄압으로부터 해방된다고 믿었다. 총독부 경찰국에서 비밀리에 전국의 비결들을 수집하여 만든 소책자가 지난번에 말한 ‘조선비결전집’(朝鮮秘訣全集)이다. 이 책의 목차 앞부분에는 ‘비장’(秘藏)이라고 찍혀 있고, 다음과 같은 경구를 어떤 사람이 적어 놓았다.

‘이 비결전집은 이조시대에도 금서(禁書)이던 것을 일제 총독부 경찰국에서 민간인의 소장본 수백 종을 압수하여 그중에서 연구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여 일본인들의 연구용으로 몇십부 등사하여 극비로 하였던 귀중한 문헌이다.’일제때 몇십부 등사하여 총독부 관계자들만 보던 이 책이 해방후 우연히 흘러나와 필자도 소장하게 되었다. 필자의 풍수 사부님인 의산(懿山) 선생님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비결들의 제목들을 훑어보면 이렇다. ‘옥룡자청학동결’(玉龍子靑鶴洞訣)‘오백논사비기’(五百論史秘記) ‘도선비결’(道宣秘訣)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서산대사비결’(西山大師秘訣) ‘두사총비결’(杜師聰秘訣) ‘이서계가장결’(李西溪家藏訣) ‘토정역대비기’(土亭歷代秘記) ‘의상결’(義相訣) ‘류겸재일기’(柳謙齋日記) 등이다.

이러한 비결 제목에 등장하는 의상·옥룡자·토정·이서계·남사고·류겸재(류성룡의 형)는 삼국시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땅의 민초들로부터 ‘도인’이라고 존경받아온 인물들이다. 현재도 전국의 산속에서 기약없이 고군분투하는 낭인과(浪人科)들에게는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비결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요약하면 ‘언제쯤 좋은 세상이 온다, 그 좋은 세상을 몰고 오는 인물은 누구이다, 언제쯤 난리가 난다, 난세에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십승지는 어디 어디이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도탄에 빠진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총독부는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결들의 유통을 저지하고 감시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용하였다. 그러한 연구 중 하나가 무라야마(村山智順)가 저술한 ‘조선의 점복(占卜)과 예언(豫言)’(1933년)이라는 책이다. 여기에 보면 조선의 각종 점치는 방법과 풍수도참에 대해 상세하게 밝혀 놓았다. 문헌은 물론이고 전국적인 현장답사를 거친 끝에 완성한 책자다. 무라야마는 유명한 ‘조선의 풍수’(朝鮮의 風水)의 저자이기도 하다. 조선의 민속과 역술, 전통문화에 대해 치밀하게 조사하였던 총독부 소속 학자다.

일본 학자들은 역으로 비결을 이용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 예가 인구에 회자되는 ‘방백마각(方百馬角) 구혹화생(口或禾生)’이라는 도참이다. 이 글씨는 계룡산 연천봉(連天峯) 꼭대기 바위에 암각되어 있다. 방백(方百)은 네모진 100년으로 본다. 400년(四百年)이 네모진 100년이다. 그 다음에 마(馬)는 십이지로 환산하면 오(午)이다. 오를 파자하면 80(八十)이 된다. 각(角)은 뿔이 두개라는 소리다. 이를 전부 합치면 482년이라는 숫자가 도출된다. 뒷부분의 구혹(口或)을 합치면 국(國)자가 나온다. 역시 화생(禾生)을 합치면 이(移)자가 성립된다.

옛날에는 이(移)자를 화생이라고도 사용하였다. 앞뒤를 연결하면 ‘482년만에 나라(조선)를 옮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선왕조 창업이 1392년이니 여기에 482년을 합하면 1874년이 나온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시작되는 강화도조약이 1876년에 맺어졌으니 대략 이 무렵에 조선은 나라를 옮긴다. 즉, 망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일본 학자들은 해석하였다.

따라서 조선 합병은 하늘의 뜻이라고 일본 학자들은 주장하였다. 이와 비슷한 도참이 서울 삼각산 꼭대기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하는 ‘방부복과(方夫卜戈) 구혹화다(口或禾多)’라는 글씨다. 방부(方夫)를 조립하면 경(庚)을 가리키고, 복과(卜戈)는 술(戌)을 가리킨다. 경술(庚戌)년에 나라를 옮긴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1910년인 경술년의 한일합방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일본 학자들은 ‘자치통감’에 나오는 ‘天與不受反受其殃’(하늘이 주는 데도 받지 않으면 반대로 재앙을 받는다)를 인용하면서 조선 병합을 정당화하는 데 도참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