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조용헌 살롱] (3)

eorks 2023. 8. 7. 04:43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3)
‘정감록’ 굳게 믿었던 강원룡 목사 부친
이는 국가적 차원의 비결이고, 개인적 차원의 비결은 피난지지를 구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게 바로 ‘십승지’다. 지금도 전국의 십승지라고 소문난 곳을 가보면 할아버지나 아버지대에 비결을 믿고 고향의 전답을 팔아 십승지로 이사한 집안 후손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풍기·무주·계룡산·변산 등이 그런 곳이다. 19세기말~20세기 초반에 걸쳐 비결파들이 가장 선호하였던 거주지들이다.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이끌었던 강원룡 목사의 자서전인 ‘빈들에서’(1권, 118쪽)를 보면 비결을 믿고 강원도로 이사했던 강목사의 부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강목사의 고향은 함경남도 남송면 원평리였다. 강목사의 아버지는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주팔자나 풍수도참설을 전적으로 무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감록’을 신봉했다는 것이다. ‘정감록’에 의하면 앞으로 큰 전쟁이 나는데 그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피난처가 강원도 횡성(橫城)지역이라며 1940년대 초반 가족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피난했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강목사는 횡성으로 찾아가 풍수도참 같은 미신을 믿어서는 안된다며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는 함경남도로 되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강목사는 자서전에서 ‘그때 부모님을 그대로 그곳에 계시게 했으면 해방후 남북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서 우리가 서로 갈라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분들이 이북 땅에서 자식도 없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대목이 나온다.

필자가 얻어들은 또 한가지 사례는 서울대 사회학과의 신용하 교수 일화이다. 신교수는 독도 문제나 한일간의 무슨 무슨 협정 때마다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적어도 일본 문제에 관한 한 신교수는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그는 제주도 태생이다. 신교수의 아버지도 역시 풍수도참을 신봉했던 모양이다. 왜정때 아버지의 주도로 신교수 가족은 계룡산 밑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계룡산 일대가 앞으로 나라의 중심이 되고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고 고개를 넘어 계룡산까지 왔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신교수의 부친도 ‘정감록’과 풍수도참을 신봉하였던 비전파였으며, 일본에 대해 상당한 반일감정을 가졌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 영향이 현재의 신교수 심정의 저변에 면면히 이어지지 않나 싶다. ‘비결 따라 삼천리’. 근세 한국사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구성하는 상당부분은 ‘비결 따라 삼천리’이다.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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