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조용헌 살롱] (4)

eorks 2023. 8. 8. 02:46

풍수지리(風水地理)

[조용헌 살롱] (4)
儒·佛·仙 모두 포용했던 탄허 스님
다시 비결로 돌아가 보자. ‘조선비결전집’의 목록 가운데 흥미롭게도 ‘숙신비결’은 발견되지 않는다. 일반인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는 비결인 것이다. 숙신(肅愼)은 숙신족(肅愼族)의 숙신을 말한다. 숙신은 만주 동쪽에 거주하던 부족을 가리킨다. 지금의 베이징 위쪽에 해당하는 지역이고 상고시대에는 고조선의 강역에 속하였다. 따지고 보면 숙신족은 우리 민족의 원류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비결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 그 배경을 보면 탄허(呑虛:1913~83) 스님이 나타난다. 탄허 스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

필자의 추적에 의하면 ‘숙신비결’은 불교의 탄허 스님을 따르던 일련의 제자 그룹들 사이에서 유통되던 비결이다. 탄허 스님은 불교의 고승이었지만, ‘주역’을 비롯한 역술과 풍수도참에도 깊은 식견을 지닌 독특한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주전공이 ‘화엄경’이었다면 부전공은 ‘주역’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통현장자(李通玄長者)와 청량국사(淸凉國師)의 화엄경 주석을 종합하여 ‘대방광불신화엄경합론’(大方廣佛新華嚴經合論) 49책을 주석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선가적(禪家的) 입장에서 ‘주역’을 주석한 ‘주역선해’(周易禪解) 3권을 펴내기도 하였다. 두 책 모두 학술적으로도 비중 있는 저술이다. 한쪽 손에는 삼라만상을 모두 포용하고 긍정하는 불교철학의 최고봉인 ‘화엄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다른 한쪽 손에는 삼라만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주역’을 가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는 쌍권총을 차고 있었던 것이다.

탄허는 ‘삼라만상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一切唯心造)와, ‘부분이 즉 전체요, 전체가 즉 부분이다’(一卽多 多卽一)는 도리를 밝히는 ‘화엄경’을 체(體)로 하고, 앞일을 예측하는 ‘주역’을 용(用)으로 하여 나라의 앞일을 예견하면서 1960~70년대 국사 역할을 하였다. 그는 ‘주역’의 육효(六爻)를 사용하여 점을 치는 육효점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주역’이 가지고 있는 점서적(占書的)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 바로 육효점이다. 이는 역대 주역을 마스터했던 공자·주렴계·소강절·주자·서경덕·토정과 같은 모든 학자들과 구루(Guru)들이 실천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죽어라 하고 배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현실에서 활용해야 할 것 아닌가.

탄허는 불교 승려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문화권의 ‘주역’ 대가들이 실천하였던 그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육효를 뽑아 보았다. 그날의 일진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그 방법은 엽전 3개를 던져 괘를 뽑는 방식이었다. 특히 오래 된 엽전이 영험이 있다고 한다. 오래 된 물건일수록 거기에는 신(神)이 붙는다고 본다. 신은 곧 마음이기도 하다. 탄허가 가지고 있던 엽전은 오래 된 ‘상평통보’였던 것 같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상평통보 3개를 한번 던져 하괘를 뽑고, 다시 한번 더 던져 상괘를 뽑으면 6효가 완성된다. 예를 들어 처음에 던진 3개의 엽전 가운데 한개는 앞면이 나오고 두개는 뒷면이 나오면 팔괘 가운데 진괘(震卦)이고, 두번째 던져 3개 모두 뒷면이 나오면 곤괘(坤卦)가 된다. 진괘와 곤괘를 합치면 지뢰복(地雷復) 괘가 되어 그날은 아주 상서롭다고 보는 식이다.

이를 보면 탄허는 불교의 일반 고승들과는 분명히 다른 전통을 잇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불가에서는 주역을 은근히 거부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일체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무엇하러 번거롭게 괘를 뽑느냐는 것이 일반적으로 주역을 대하는 태도다. 그러나 탄허는 불교 승려이면서도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를 아울러 포용하는 포함삼교(包涵三敎)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포함삼교’는 신라말 최치원이 한 말이다. 최치원 이래 한국의 정신사는 유교 하나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교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다.

삼교를 모두 알아야만 전체를 볼 수 있다. 원효만 알고 퇴계를 몰라서도 안되고, 퇴계만 알고 북창(北窓, 조선 중종때 천문·의학에 능통했던 유학자 정렴의 호)을 몰라서도 이야기가 안된다. 유교로부터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를 배우고, 불교는 마음의 구조를 밝히는 명심(明心)의 이치를, 선교로부터는 몸을 다스리는 양생(養生)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탄허는 이 세가지 전통을 모두 섭렵한 고승이었다.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알았던 탄허에게는 전국의 내로라 하는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모여들었다. 차별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속인도 있었고 한학의 대가도 있었으며 무술의 고단자, 의학에 밝은 기인, 차력술을 가진 역사, 기문둔갑을 연구한 술사, 정치인, 예술가 등이 탄허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실로 화엄경의 하이라이트인 입법계품(入法界品)을 연상할 만큼 온갖 인간 군상들과 교류하였다. 탄허는 그들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어 주었다. 이야기 들어 주는 도력도 겸비하였던 것이다. 이들도 또한 탄허를 만나면 이야기가 즐거웠다.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일방적이면 재미가 없는 법인데, 한가지 알려주면 한가지를 배울 수 있는 관계였던 것 같다. 옆에서 차 심부름을 하면서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이야기만 들어도 공부가 저절로 되었다고 어느 제자는 술회하였다. 필자도 좀더 일찍 태어나 그 멤버들과 어울렸더라면 좀더 사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탄허가 머무르던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서울 대원암(大圓庵), 계룡산 학하리의 자광사(慈光寺)가 바로 그러한 방외지사들이 집합하는 아지트이자 살롱이었다. 아니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성싶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속물스럽게도 돈이 생각난다.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독자들이여! 내 책 좀 많이 사주시라! 그래서 내가 살롱이 됐든, 양산박이 됐든 하나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돈 벌어 어디에 쓰겠는가. 이런 데 써야지…. 천하의 건달과 술사 그리고 도인들이여! 다 여기로 오라. 내가 밥상 차릴 테니 우리 한번 놀아보자.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인생. 이때 안 놀고 언제 놀 것인가.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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