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54.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 고을 이름이 길주인데 길한 고을이 아니고

eorks 2024. 11. 4. 16:42

54.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
고을이 길주인데 길한 고을이 아니고


    북쪽으로 올라올수록 인심이 사나워서 吉州(길주) 사람들은 낮 선 사람을
    좀처럼 재워주려 하지 않았다.

    이 고을에서 제법 잘 산다는 許富者(허부자)집을 찾아 가 보았지만 문전박
    대를 당하고 말았다.

    오랑캐들의 침략을 자주 받아 온 탓으로 인심이 그렇게 모질어 진 모양이
    었다.

    저물어 가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난 김삿갓은 이
    렇게 중얼거렸다.


              고을 이름을 길주라 하건만 길한 고을이 아니고
              성씨를 허가라고 하건만 허락 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吉州吉州不吉州(길주길주불길주)
              許可許可不許可(허가허가불허가)


    할 수 없이 김삿갓은 明川(명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명천은 생선이 많이 잡히는 곳이니 명천에 가면 생선만은 잘 얻어먹으리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명천에 들어서니 아무리 밥을 얻어먹어도 생선 같은 것은 그
    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김삿갓은 명천 고을에 대해서도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어느 집 밥상에도 생선은 없다.

              明川明川不明川(명천명천불명천)
              漁佃漁佃食無魚(어전어전식무어)


    길주 명천을 총총히 떠난 김삿갓은 함경도의 북단인 鏡城(경성)으로 발길
    을 돌렸다.

    경성은 자고로 북방을 지키던 역사가 많은 곳이지만 鏡城 名妓 洪娘(경성
    명기 홍낭)과 咸鏡評事(함경평사)를지낸 孤竹 崔慶昌(고죽 최경창)과의
    애정비화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최경창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 올 제

    咸關嶺(함관령)까지 배응 나온 홍랑은 버들가지하나를 꺾어 올리며 다음
    과 같은 시조를 읊었고.

    孤竹(고죽)은 즉석에서 그 시조를 한시로 옮기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임의 손에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초췌한 근심어린 눈섶이 바로 저인줄 아세요.

              折柳寄與千里人(절류기여천리인)
              爲我試種門庭前(위아시종문정전)
              須知一夜新生葉(수지일야신생엽)
              憔悴愁眉是妾身(초췌수미시첩신)


    사랑하는 여인이 읊어 준 시조를 즉석에서 한시로 옮겨 놓았다는 것은 얼
    마나 운치있는 일인가.

    그 후 홍랑은 임진왜란 때 戰死(전사)한 최경창의 무덤 옆에서 3년 동안 守
    墓(수묘)를 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남겨 놓은 詩集(시집)을 항상 품속에 지녔던 덕택에 三唐詩人(삼당시
    인)의 한 사람으 로 일컬어지던 최경창의 주옥같은 시가 兵禍(병화)를 면하
    고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충절에 감동하여 최씨문중에서는 홍랑이 죽은 후에 그의 시신을 최경
    창의 무덤 옆에 묻어 주었고,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파주 교하에 신분
    을 초월한 사랑의 전설을 간 직한 채, 꿈에 그리던 님과 나란히 잠들어 있
    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