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어느덧 저물어오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 집에서는 난데없는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않는가.
가만히 들어보니 採藻曲(채조곡)이 분명하였다.
그 옛날 매화가 歸薺曲(귀제곡)을 즐겨 불렀던 일이 불현듯 머리에 떠 올라 감회가 새삼스러웠다.
잠시 후면 꿈에 그리던 매화를 직접 만날 수 있겠기에 재회의 감격을 그려 보며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었다. 헤어져 있었기로 옛정을 잊을쏘냐. 너도 늙었겠지만 내 머리도 세었노라 거울 빛은 차갑고 봄기운은 적적한데 소식 끊긴 지 오래 달빛조차 막막하구나. 一從別後豈堪忘(일종별후기감망) 汝骨爲粉我首霜(여골위분아수상) 鸞鏡影寒春寂寂(란경영한춘적적) 風簫音斷月茫茫(풍소음단월망망)
지난날은 귀제곡 즐겨 부르더니 지금은 헛되이 채조곡이 웬 말이냐 어딘지 간 곳 몰라 만나 보기 어렵다가 이제야 거름 멈추고 들꽃 향기 즐기노라. 早今衛北歸薺曲(조금위북귀제곡) 虛負周南採藻曲(허부주남채조곡) 舊路無痕難再訪(구로무흔난재방) 停車坐愛野花芳(정거좌애야화방)
김삿갓은 매화와의 재회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와서 거문고 소 리를 들어가며 시까지 읊었다.
이윽고 거문고 소리가 끊기자 김삿갓은 큰 기침을 하고 나서 사뭇 정 겨운 목소리로 매화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