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을 위로하려고 그와 대작하던 퇴기 추월은 늙은 탓인지 술 몇 잔이 들어가자 그만 먼저 취하는 모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침울하여 보이는 그였지만 옛날가락이 발동하는지 장구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른다.
목소리가 찢어져 듣기가 거북하건만 어느덧 그녀는 추파까지 보내고 있었 다.
술잔을 거듭할수록 옛 情人 梅花(정잉 매화)생각만 되살아나는 김삿갓은 老妓 秋月(노기 추월)을 상대로 춘정을 발동시킬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기에 술이나 마시면서 적당히 얼버무려 응수하다가 다음과 같은 즉흥 시 한 수를 읊었다.
봄은 와서 화창한데 그대 홀로 침울하니 묵은 시름 쌓여서 걱정이 깊음인 듯 구름 잠긴 절간의 늙은 중 이런가 달밤에 배 저어 가는 병든 나그네런가. 萬木春陽獨抱陰(만목춘양독포음) 聊將殘愁意惟深(료장잔수의유심) 白雲古寺枯禪夢(백운고사고선몽) 明月孤舟病客心(명월고주병객심)
깡마른 얼굴을 찡그리니 보기 흉하고 노래는 바스러져 알아 줄 이 없는데 내 글이 그러하고 그대 몰골 그러하니 청루에 장단 치며 우는 것만 같구나. 嚬亦魂衰多見罵(빈역혼쇠다견매) 唱還啁啾少知音(창환조추소지음) 文章到此猶如此(문장도차유여차) 擊節靑樓慷慨吟(격절청루강개음)
시 한 수를 읊고 난 김삿갓은 뙤땅에 팔려 간 매화를 다시 생각하며, 오랑 캐 에게 끌려가는 王昭君(왕소군)의 모습을 그린 李太白(이태백)의 시를 머리에 떠 올리면 서 중국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애정비극을 오늘의 매화 에게 비겨 본다. 아름다운 안장을 쓰다듬는 왕소군 말 위에서 고운 얼굴에 눈물 지운다. 오늘은 한 나라 제왕의 후궁이더니 내일은 오랑캐 땅의 첩이 되는구나.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上馬啼紅顔(상마제홍안)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