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밭에서 일하던 아내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다리고 들어왔다.
김삿갓은 반가우면서도 놀라웠다.
어머니는 어데 가셨고, 자기가 떠날 때 세살이었던 아들 鶴均(학균)이가 아직도 저렇게 어리지는 않을 것인데 그 애는 어디 가고 저 애는 누구란 말인가?
알고 보니 그 간의 사연은 이러했다.
어머니는 50을 겨우 넘긴 친정 오라비 내외가 80노모를 두고 차례로 세 상을 떠나자 의지할 곳 없는 친정어머니를 봉양하고 어린조카들을 거두 려고 충청도 洪城(홍성)으로 가셨고,
학균이는 아들이 없는 그의 큰아버지가 양자로 데려갔으며,
열 살짜리 아이는 부인이 임신한 것도 모르고 김삿갓이 방랑길에 오른 8 개월 후에 낳았는데
아버지가 친히 이름 지어주기를 기다리느라고 아직도 둘째라고만 부른 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한 김삿갓은 우선 둘째의 이름을 翼均(익균)이라고 지었다.
벌서 孟子(맹자)를 읽는다는 익균이는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매우 총 명하였다.
처음 보는 아버지를 무척 따르며 어리광을 부리던 익균이는 글방 선생님 에게서 아버지는 시를 짖는데 귀신이라고 들었다면서 시 한 수를 지어 달 라고 보채는데 마침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밤을 타서 이리 저리 싸돌아다니니 여우 살쾡이와 함께 세 걸물이로다. 검은 털에 흰 털 박혀 수를 놓은 듯 푸르고 누런 눈에 쪽빛이 반짝이네. 乘夜橫行路北南(승야횡행로북남) 中於狐猩傑爲三(중어호성걸위삼) 毛分黑白渾成繡(모분흑백혼성수) 目狹靑黃半染藍(목협청황반염람)
귀한손님 밥상에서 맛난 반찬 훔쳐내고 노인들 품속에서 따뜻하게 지내누나. 새나 쥐 따위가 어찌 교만할 수 있으랴 사냥할 때 그 날쌤 큰소리 칠만 하구나. 貴客床前偸美饌(귀객상전투미찬) 老人懷裡傍溫衫(노인회리방온삼) 那邊雀鼠能驕慢(나변작서능교만) 出獵雄聲若大談(출렵웅성약대담)
시를 지어 종이에 써놓고 아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니 소년은 들을수록 재미가 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귀신같다' 면서 고양이에 대한 시를 한 수 더 지어보란다.
'이 녀석이 아비를 시험해도 분수가 있지' 하면서도 대견한 아들을 바라보며 내심 흐뭇하여 다시 한 수를 지었다. 온갖 짐승 중에 네 재주가 으뜸이라 날쌔게 오고 가도 먼지 하나 안 나누나 가다가 범을 보면 잠시 자취를 감추고 뛰다가 개를 보면 뺨을 건드려 놀린다. 三百群中秀爾才(삼백군중수이재) 作來作去不飛埃(작래작거불비애) 行時見虎暫藏跡(행시견호잠장적) 走處逢尨每打顋(주처봉방매타시)
주인집 쥐를 잡아 칭찬은 들어오나 이웃 닭 없어지면 의심 받기 일쑤로다 이곳저곳 다니며 울음소리 괴상해 밤에 울던 아이들 겁에 질려 멈추네. 獵鼠主家雖得譽(렵서주가수득예) 捉鷄隣里豈無猜(착계린리기무시) 南街北巷啼歸路(남가북항제귀로) 能劫千村夜哭孩(능겁천촌야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