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일색 양귀비도 한 줌 흙을 남겼을 뿐인데 무엇을 망설이느냐" 는 유혹 의 시를 받아 읽고 충격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는지,
주모는 오래도록 망설인 끝에 술상을 다시 보아 들고 김삿갓의 방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한 바가 있었던지 의외의 제안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삿갓 어른을 모시되 이부자리를 펴놓는 것만으로 대신하면 어떻겠 습 니까?"
이부자리만 펴놓고 살을 섞는 짓만은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김삿갓은 여인의 고고한 뜻을 알아채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좋도록 하세그려. 자고로 志不可滿(지불가만)이요 樂不可極(악불가극)이라 (뜻을 채워서는 안되 고, 즐거움을 끝까지 해서는 안된다.) 했으니 이부자리 만 폈으면 됐지, 구태여 그 속에 들어가 금수와 같은 짓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겠나."
옛날의 高士(고사)와 名妓(명기)들은 서로 뜻이 맞으면 이부자리만 펴놓고 실지로 살을 섞지는 않는 일이 더러는 있었기에 김삿갓도 흔쾌히 응낙하였 던 것이다.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일어나서 원앙금침을 정성스럽게 펴놓았다.
이 날 밤 두 남녀는 이부자리 옆에 앉아 술만 나누었을 뿐, 이불 속으로 들 어갈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애정도 없이 살을 섞으면 그것은 단순한 야합이지 않는가.
김삿갓은 주모의 亡夫(망부)에 대한 의리를 높이 평가하고 주모는 김삿갓의 인품 을 소중히 여겨 주고 있었다.
"내가 勸酒詩(권주시)를 한 수 읊어 줄 테니 자네도 한잔 마시게."
김삿갓은 여인에게 술잔을 내밀며 옛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대에게 한잔 술 권하노니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꽃이 피면 비바람이 많고 사람사리에는 이별도 많다네. 勸君一盃酒(권군일배주)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 花發多風雨(화발다풍우) 人生足別離(인생족별리)
여인은 술잔을 들고 눈물을 삼키며 "저도 옛 시로써 화답을 올리겠습니다." 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임도 나와 헤어지며 눈물 지우고 저 역시 울면서 헤어지려오. 그리운 눈물이 비가 되어서 정든 님 옷자락에 뿌려 지이다. 君垂別妾淚(군수별첩루) 妾亦淚含離(첩역루함리) 願作陽臺雨(원작양대우) 更灑郎君衣(경쇄랑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