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68.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eorks 2024. 11. 18. 15:31

68.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천하일색 양귀비도 한 줌 흙을 남겼을 뿐인데 무엇을 망설이느냐" 는 유혹
    의 시를 받아 읽고 충격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는지,

    주모는 오래도록 망설인 끝에 술상을 다시 보아 들고 김삿갓의 방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한 바가 있었던지 의외의 제안을 해 오는 것이
    아닌가.

    "제가 삿갓 어른을 모시되 이부자리를 펴놓는 것만으로 대신하면 어떻겠 습
    니까?"

    이부자리만 펴놓고 살을 섞는 짓만은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김삿갓은 여인의 고고한 뜻을 알아채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좋도록 하세그려. 자고로 志不可滿(지불가만)이요 樂不可極(악불가극)이라
    (뜻을 채워서는 안되 고, 즐거움을 끝까지 해서는 안된다.) 했으니 이부자리
    만 폈으면 됐지, 구태여 그 속에 들어가 금수와 같은 짓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겠나."

    옛날의 高士(고사)와 名妓(명기)들은 서로 뜻이 맞으면 이부자리만 펴놓고
    실지로 살을 섞지는 않는 일이 더러는 있었기에 김삿갓도 흔쾌히 응낙하였
    던 것이다.

    여인은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일어나서 원앙금침을 정성스럽게 펴놓았다.

    이 날 밤 두 남녀는 이부자리 옆에 앉아 술만 나누었을 뿐, 이불 속으로 들
    어갈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애정도 없이 살을 섞으면 그것은 단순한 야합이지 않는가.

    김삿갓은 주모의 亡夫(망부)에 대한 의리를 높이 평가하고 주모는 김삿갓의
    인품 을 소중히 여겨 주고 있었다.

    "내가 勸酒詩(권주시)를 한 수 읊어 줄 테니 자네도 한잔 마시게."

    김삿갓은 여인에게 술잔을 내밀며 옛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그대에게 한잔 술 권하노니
              넘치는 이 술잔 사양치 말게
              꽃이 피면 비바람이 많고
              사람사리에는 이별도 많다네.

              勸君一盃酒(권군일배주)
              滿酌不須辭(만작불수사)
              花發多風雨(화발다풍우)
              人生足別離(인생족별리)


    여인은 술잔을 들고 눈물을 삼키며 "저도 옛 시로써 화답을 올리겠습니다."
    하더니

    다음과 같은 시를 떨리는 목소리로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임도 나와 헤어지며 눈물 지우고
              저 역시 울면서 헤어지려오.
              그리운 눈물이 비가 되어서
              정든 님 옷자락에 뿌려 지이다.

              君垂別妾淚(군수별첩루)
              妾亦淚含離(첩역루함리)
              願作陽臺雨(원작양대우)
              更灑郎君衣(경쇄랑군의)


    실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심야의 이별곡이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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