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은 술에는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좋아했다는 절세미인을 잊지 못하는 괴로움을 지금까지도 술로 달래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선비로서의 긍지만은 대단하여 취중에도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 뇌이고 있었다.
「자네가 시조박이나 짖는다고 철없이 거들먹거려대기는 하네만 내가 보 기엔 아직도 口尙乳臭(구상유취)야. 암 구상유취구 말구」.
선비다운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 주제에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말았다.
날이 밝자마자 붓을 들어 <訓戒訓長(훈계훈장)>이란 제목으로 호되게 꾸짖 는 시 한 수를 써갈겨놓고,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서당을 빠져 나와 묵묵히 이슬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삿갓의 마음은 서글프기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두메산골 괴팍스러운 훈장은 문장대가를 알아보지도 못하네. 종지 같은 술잔으로 바닷물을 어찌 되며 쇠귀에 경 읽기니 무엇을 깨달으랴. 化外頑氓怪習餘(화외완맹괴습여) 文章大家不平噓(문장대가불평허) 蠡盃測海難爲水(려배측해난위수) 牛耳頌經豈悟書(우이송경기오서)
그대는 기장이나 갉아 먹는 산골 쥐요 나는 붓으로 구름을 일으키는 뛰는 용이로다. 백 번 죽어 마땅한 네 죄를 잠시 용서하노니 어른 앞에서 행여 까불지 말지니라. 含黍山間奸鼠爾(함서산간간서이) 凌雲筆下躍龍余(릉운필하약용여) 罪當笞死姑舍已(죄당태사고사이) 敢向尊前語詰詎(감향존전어힐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