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필휘지해 내밀었지만 훈장은 아무리 읽어 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는지, 운자는 맞지만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이 무슨 시냐? 면서 술을 사라 고 재촉한다.
김삿갓이 크게 웃고 나서 자기 시를 다음과 같이 풀이 해 보였다.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하도 고리고(環=환) 구리니(銅=동) 나는 시를 音으로 짖지 않고 새김(鳥熊=조웅)으로 지으리다. 탁주 한 동이 빨리빨리 가져오소 이번 내기는 자네가(尺四=척사) 지네(蚣=공)
훈장은 설명을 듣고 나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것은 패담이지, 그런 시가 어디 있단 말이요, 허나 尺四(척사)라고 써 놓 고 자네라고 읽고, 蚣(공)자를 지네라고 읽게 만드는 재주는 참으로 대단하 오.」 하면서 순순히 술을 내온다.
그런데 훈장이 호탕한 면도 있지만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김삿갓으로도 당해 낼 수가 없고,
술이 취하자 잡담을 늘어놓으면서 지난 날 자기가 가까이 했던 여인이 절세 미인 이었다고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듣기가 지루해진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지어 보였다.
목마를 때 한잔은 단 이슬과 같으나 취한 뒤에 또 마심은 없느니만 못하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고 계집이 사내를 미치게 하는 게 아니라 사내가 스스로 미친다. 渴時一滴如甘露(갈시일적여감로) 醉後添盃不如無(취후첨배불여무) 酒不醉人人自醉(주불취인인자취) 色不迷人人自迷(색불미인인자미)
훈장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취기가 몽롱한 훈장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를 한참 드려다 보더니 酒不醉人人自醉요, 色不迷人人自迷(주불취인인자취요,색불미인인자미)라 는 구절은 기가 막히게 좋다면서 칭찬까지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