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65. 자네가 지네

eorks 2024. 11. 15. 09:54

65. 자네가 지네


    김삿갓이 집을 나섰지만 애초부터 洪城(홍성)으로 가서 어머니를 뵈올 생
    각은 아니었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도리이지만 어머니를 뵙고서
    는 차마 다시 방랑길에 오르지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을 나선 그는 마누라와 자식 놈이 금방이라도 쫓아 올 것만 같아 무작정
    산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서녘 하늘에 놀이 붉어오고 있었
    다.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강원도와 함경도를 구경하였으니 이번에는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충청, 전
    라, 경상도 방면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서울을 거쳐 황해, 평안도의 서북쪽으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던 그
    는 차마 어머니가 계시는 충청도로 가지 못하고 서울 쪽으로 방향을 잡았
    다.

    얼마를 가다가 날이 저물어 잘 곳을 찾으려고 하니 비록 푸대접을 받는다
    해도 역시 만만한 곳은 글방이었다.

    그래서 찾아 갔지만 예상한 대로 훈장은 오만하였고, 자기가 운자를 부를
    것이니 시를 지어 보라고 했다.

    시를 잘 지으면 재워 줄 것이고, 잘 못 지으면 벌로 술을 한 동이 사라는 것
    이다.

    그러면서 銅(동), 熊(운), 蚣(공) 세 글자를 운으로 부른다.

    김삿갓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자가 시를 지을 수 없는 글자만 골라서 운자를 부르면서 내기를 하자는
    것이니 그에 걸맞도록 응수를 해주마.

              主人呼韻太環銅(주인호운태환동)
              我不以音以鳥熊(아불이음이조웅)
              濁酒一盆速速來(탁주일분속속래)
              今番來期尺四蚣(금번래기척사공)


    일필휘지해 내밀었지만 훈장은 아무리 읽어 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는지, 운자는 맞지만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이 무슨 시냐? 면서 술을 사라
    고 재촉한다.

    김삿갓이 크게 웃고 나서 자기 시를 다음과 같이 풀이 해 보였다.


              주인이 부르는 운자가 하도 고리고(環=환) 구리니(銅=동)
              나는 시를 音으로 짖지 않고 새김(鳥熊=조웅)으로 지으리다.
              탁주 한 동이 빨리빨리 가져오소
              이번 내기는 자네가(尺四=척사) 지네(蚣=공)


    훈장은 설명을 듣고 나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것은 패담이지, 그런 시가 어디 있단 말이요, 허나 尺四(척사)라고 써 놓
    고 자네라고 읽고, 蚣(공)자를 지네라고 읽게 만드는 재주는 참으로 대단하
    오.」 하면서 순순히 술을 내온다.

    그런데 훈장이 호탕한 면도 있지만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김삿갓으로도
    당해 낼 수가 없고,

    술이 취하자 잡담을 늘어놓으면서 지난 날 자기가 가까이 했던 여인이 절세
    미인 이었다고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듣기가 지루해진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지어 보였다.


              목마를 때 한잔은 단 이슬과 같으나
              취한 뒤에 또 마심은 없느니만 못하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취하고
              계집이 사내를 미치게 하는 게 아니라 사내가 스스로 미친다.

            渴時一滴如甘露(갈시일적여감로)
            醉後添盃不如無(취후첨배불여무)
            酒不醉人人自醉(주불취인인자취)
            色不迷人人自迷(색불미인인자미)


    훈장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취기가 몽롱한 훈장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를 한참 드려다 보더니
    酒不醉人人自醉요, 色不迷人人自迷(주불취인인자취요,색불미인인자미)라
    는 구절은 기가 막히게 좋다면서 칭찬까지 하는 것이었다.

......^^백두대간^^........白頭大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