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장은 되도록 피하면서도 명승지만은 골라가며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여주에서 대표적인 명승지는 뭐니 뭐니 해도 神勒寺(신륵사)라 하겠다.
신륵사는 鳳尾山(봉미산) 동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눈앞에는 한강 의 상류인 驪江(려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강가의 바위 위에는 江月軒(강월헌)이라는 정자까지 서있어서 고려 때 명승 懶翁 禪師(라옹 선사)의 일화와 함께 산수의 조화미 위에 또 하나의 멋을 더 하여 가위 금상 첨화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벽돌로 쌓아 올린 유명한 塼塔(전탑)이 있어서 속칭 벽돌벽자 甓 寺(벽사)라 고도 하는 절이다.
강월헌에는 시인묵객들의 시가 많이 걸려 있는데 고려 말의 큰 선비 牧隱 李穡(목은 이색)의 다음과 같은 시가 눈길을 끌었다. 천지는 가이 없어도 인생은 가이 있으니 호연히 돌아가려 하나 어디로 갈 것인가 여강의 산은 그림처럼 아름다워 반은 단청 같고 반은 시와 같구나. 天地無涯生有涯(천지무애생유애) 浩然歸志欲何之(호연귀지욕하지) 驪江一曲山如畵(려강일곡산여화) 半似丹靑半似詩(반사단청반사시)
유유히 흐르는 여강을 굽어보며 자연의 무궁함과 인생의 유한함을 노래하 면서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한탄하고 있다.
망국민으로서의 회한일 수도 있겠고 인생무상을 읊조린 것을 수도 있을 것 이다.
그 옆에는 역시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陽村 權近(양촌 권근)의 시도 걸려 있었다.
나 여기 와 아름다운 강산을 사랑하며 진종일 배도 타고 난간에도 기대 본다. 물 밑에는 절의 그림자 아른거리고 숲 사이에는 선경이 보이는 듯 마는 듯하구나. 我來愛此好江山(아래애차호강산) 終日乘船又倚欄(종일승선우의란) 水底森羅開佛刹(수저삼라개불찰) 林間隱約見仙壇(림간은약견선단)
신륵사의 종소리 한 밤중에 울려서 광릉에 돌아갈 길손의 꿈을 깨워 주네 만약 장계더러 이곳을 구경하라 했다면 한산만을 유명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리라. 甓寺鐘聲夜半鳴(벽사종성야반명) 廣陵歸客夢初驚(광릉귀객몽초경) 若敎張繼曾過山(약교장계회과산) 未心寒山獨擅名(미심한산독천명)
중국 蘇州(소주)에 있는 寒山寺의 종소리를 들으며 지었다는 張繼(장계)의 <楓橋夜泊(풍교야박)> 이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신륵사의 경승과 여강의 즐 거움을 노래했다.
끝까지 節義(절의)를 고수했던 牧隱(목은)과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陽村(양촌), 다 같은 이 나라의 석학이었지만 같은 山河(산하)를 바 라보는 느낌은 이처 럼 서로 달랐음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