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이야기

89. 산 이름은 송악인데

eorks 2024. 12. 9. 06:51

 


89. 산 이름은 송악인데


    개성시내 곳곳의 유적을 안내하면서 자기 집에 유숙케 하는 선비의 친절은
    고맙지만 가난해 보이는 선비 집에 여러 날 머물러 있을 수도 없어서 만류를
    무릅쓰고 작별을 고하고 나왔다.

    그러나 어제 보았던 단풍으로 곱게 물들은 그 松嶽山(송악산)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千紫萬紅(천자만홍)을 한 눈으로 바라보며 송악산을 서서히 올라갔
    다 내려오니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개성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가야겠기에 이집 저집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
    절이다.

    한 집은 여자만 있어서 안 된다 하고, 또 한 집은 과객을 재울 방이 없다고 하
    더니 또 다른 집은 땔 나무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원 이런 놈의 인심 이 어
    디 있단 말인가.

    김삿갓은 울분을 토로하면서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읍 이름이 개성이니 문을 닫지 말아라.
              산 이름은 송악인데 왜 나무가 없다 하는가.
              저녁에 손님을 쫓는 것은 인사가 아닌데
              예의 바른 나라에서 그대만이 진 나라 놈이구나.

              邑號開城莫閉門(읍호개성막폐문)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
              禮儀東方子獨秦(례의동방자독진)


    시 한수를 읊고 나니 울분이 한결 풀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잠자리가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잠자리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어느 절간을 찾아 갈 수밖에 없는데 어떤 절
    이 어느 산 구석에 박혀 있는지 그것조차 알 길이 없지 않는가.

    무턱대고 산으로 오르려는데 저 멀리서 나무꾼의 노랫소리가 들여온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나무꾼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시 한 수를 읊는다.


              오두막 저녁밥 짖는 연기 사라지고
              해 저물어 새는 깃으로 돌아가는데
              나무꾼은 하늘가 밝은 달을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며 청산을 내려오네.

              茅屋炊煙歇(모옥취연헐)
              日暮飛鳥還(일모비조환)
              樵客見明月(초객견명월)
              長歌下靑山(장가하청산)


......^^백두대간^^........白頭大幹

'김삿갓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91. 장 기  (0) 2024.12.11
90. 개다리소반에 죽 한 그릇  (0) 2024.12.10
88. 고려궁의 정원 만월대  (4) 2024.12.08
87. 망국의 한  (4) 2024.12.07
86. 소리정에서  (0) 202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