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오던 나무꾼 변서방은 절을 묻는 김삿갓에게 절을 찾아가기엔 너무 늦었으니 누추하지만 자기 집으로 가자고했다.
산기슭의 단칸 움막에 가재도구라고는 방 한복판에 놓인 화로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나마 마누라가 없는 탓인지 불씨마저 싸늘하게 꺼져 있었다.
그 화로라는 것이 커다란 통나무 뿌리를 캐어다가 아무렇게나 잘라 만든것 이어서, 모양새가 얼른 보기엔 호랑이 대가리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고 래가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괴상하게 생긴 화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삿갓은 빙그레 웃고 나서 즉흥 시 한 수를 읊었다.
머리는 호랑이요 입모양은 고래지만 자세히 바라보니 이도 저도 아니로다. 머슴을 시켜 불이라도 활활 피워 놓으면 호랑이도 고래도 능히 구워 먹겠구나. 頭似虎豹口似鯨(두사호표구사경) 詳看非虎亦非鯨(상간비호역비경) 若使雇人能盛火(약사고인능성화) 可煮虎頭可煮鯨(가자호두가자경)
화롯불에 고기 구워 먹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변서방이 저녁이라고 들고 들 어 온 것은 삶은 감자가 반쯤 담긴 바가지 하나였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먹고 살지만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해서 어쩌느냐고 그는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자기 먹을 것도 부족한 것을 나누어 주면서 오히려 미안해하는 그 인정이 얼 마나 고마운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일수록 인간미가 넘치는 것을 한두 번 느끼는 것이 아 니었다.
다음날 아침은 느직이 점심을 겸해서 먹는 것인지 해가 중천에 떠서야 변 서 방은 햇볕 바른 토방에 멍석을 깔고,
침침한 방보다는 햇볕 쪼이는 이곳으로 나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부른다.
나가 보니 개다리소반에 죽 한 그릇이 덩그렇게 노여 있는데 그 죽이라는 것 이 어찌나 묽은지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훤히 내려 비치고 있었다.
그래도 손님 대접을 하려고 쌀 한 줌을 어렵게 구하여 죽을 쑤어 내왔나보다.
오히려 미안해하는 주인과 마주하여 맹물과 다름없는 멀건 죽을 먹으면서 ‘이토록 착한 백성들이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순수한 마음씨에 감복하여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다시 읊었다.
네 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비치네. 주인양반 조금도 무안해 할 것 없소 내 본시 물에 거꾸로 비친 산 그림자를 좋아한다오.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