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호남일대를 떠돌던 김삿갓은 강진을 떠날 때 안진사가 써준 편지 를 꺼내 보았다.
김삿갓이 화순의 동복에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적벽강과 똑같은 강이 있다는데 꼭 한 번 찾아가 보겠다고 했을 때 그 곳에 가려거든 申錫愚(신석 우)라고 하는 자기 친구를 찾아 가라면서 써 준 편지였다.
김삿갓은 이제 기력이 쇠잔하여 더 이상 방랑할 수도 없었다.
신석우라는 선비를 찾아가서 신세를 지면서 마지막으로 적벽강이나 보았 으 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벽강이 있다는 화순 동복을 찾아가는 길에 迦智山(가지산)의 명찰 寶林寺 (보림사)와 龍泉寺(용천사)를 구경하고 풀밭에 누워 피로를 풀며 자기 신세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천명인데 어찌 쉽게 얻으랴 나는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노라 고향 하늘 바라보니 천리 길 아득한데 남쪽을 헤매는 신세 물거품과 같구나. 窮達在天豈易求(궁달재천기역구) 從吾所好任悠悠(종오소호임유유) 家鄕北望雲千里(가향북망운천리) 身勢南遊海一漚(신세남유해일구)
술잔을 비로 삼아 시름을 쓸어버리고 달을 낚시로 삼아 시를 낚아 오면서 보림사 용천사를 두루 구경하고 나니 내 마음 욕심 없어 스님과 다름없네. 掃去愁城盃作帚(소거수성배작추) 釣來詩句月爲鉤(조래시구월위구) 寶林看盡龍泉又(보림간진용천우) 物外閑跡共比丘(물외한적공비구)
이 시로 미루어 보면 김삿갓은 이미 일체의 욕망을 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