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때 유머

[고전유머]2-28화 기생 공부 선비 공부

eorks 2007. 3. 23. 21:54
[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2부 화류춘몽, 그 웃음과 눈물

(제2-28화)기생 공부 선비 공부

     영남 선비 김씨는 집이 부자였으나 공부를 게을리 해 문장이
   능숙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 볼 자신이 없어 대구 감영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가 머물면서, 친구에게 돈을 주고 대리 과거를
   보아 줄 마땅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곧 친구는 여러 선비들을 소개했으나 김씨는 다 거절하고, 마
   지막 한 선비에게 1백 냥을 주고 부탁하여 대리로 응시해 초시
   에 급제했다.
     김씨는 다시 이 사람에게 복시(復試;초시에 급제한 다음 대
   과를 위한 예비 과거 시험)를 준비하게 하고, 자신은 친구와 함
   께 대구 성중을 돌아다니면서 유람하고 놀았다.
     한 골목에 이르러 친구가 김씨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여기 교방(敎坊)에 근래 새로 들어온 기생이 있는데, 유명하
   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으니 한번 만나 보고 싶지 않는가?"
     이 말에 김씨는 특별히 마음이 내키는 것은 아니였지만, 친구
   의 권유로 구경이나 해보자고 하면서 기생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한 노파가 아름답게 꾸며진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가 조금 앉아 있으니 한 여자아이가 와서 전하기를,
     "우리 낭자는 지금 막 잠에서 깨어 화장을 하는 중이니, 손님
   들께서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요. 곧 낭자가 나올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들어갔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으니 다시 여자아이
   가 나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낭자는 방금 화장을 끝내고 피곤해 잠시 잠들었으니 곧 일
   어나 옷을 갈아입고 나올 것입니다.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이에 김씨는 잔뜩 뜸을 들여 큰 기대를 갖게 하려는 술책으로
   생각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두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으니, 한참 후에 기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허리는 큰 장독
   처럼 굵었고 얼굴에 분과 연지를 더덕더덕 찍어 바르고 생글생
   글 웃으면서 들어와 앉는 것이었다.
     이에 여기에 들어오자고, 권했던 친구는 김씨에게 미안해하면
   서 살짝 방을 빠져나와 도망쳤고, 김씨 혼자 앉아서 기생과 이야
   기를 나누었다. 기생은 몸이 굵었지만 그런데로 얼굴은 괜찮게
   생겼으며 나이 30세 가량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김씨가 기생의
   나이를 물었더니 21세라고 대답했다.
     김씨는 한참이 지나도 친구가 들어오지 않기에 자신도 나가
   려고 일어서려는데, 기생이 눈치를 채고 붙잡아 앉히며 이야
   기를 시작했다.
     "선비들은 혀를 놀려 시와 문장으로 사람을 감동기켜서 널
   리 세상에 이름을 떨칩니다. 이것은 선비라고 해서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고 그 재능을 가슴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요. 우리 기생들도 특별히 이름이 나는 기생은 무엇인가 남다른
   노력과 공부를 하여 재능을 몸속에 감추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내가 이름이 난 것도 겉모습과는 달리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재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곧 나는 잠자리
   공부에 피나는 노력을 쌓아 이름이 난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며 여자아이가 가지고 온 술상을 앞에 놓고 술을
   한잔 권했다. 이에 김씨는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 웃으며,
     "그 잠자리 공부란 게 어떤 것인지 자세히 얘기해 보시오."
   라고 하면서 관심을 보이니. 기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곧 그것은 쉽게 말하면 첫째 `열고 닫고(開合)', 둘째 `빠르
   게 느리게(緩急)', 셋째 `잡았다 놓았다(擒縱)' 하는 공부랍니다.
   첫째의 것은 다리의 허벅지 부분이 맡아 하는 작업이며, 둘째의
   것은 허리 부분이 맡아서 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셋째의 것은
   몸속 깊은 속에서 맡아 하는 것인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랍니다. 설명으로는 자세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느끼셔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러고 기생은 직접 보여 드리겠다고 하면서 옷을 벗기 시작
   했다. 곧 김씨도 옷을 벗고 기생의 유도에 따라 그 배 위에 올라
   가 엎드리니, 덩그렇게 높아 큰 말을 탄 기분이었는데 눌러 힘을
   주니까 이상하게도 무한히 내려가 방바닥에 납작하게 붙는 느낌
   을 받았다. 이처럼 그 몸의 신축 정도가 매우 커서 대단한 율동
   감각을 맛볼 수가 있었다.
     `아, 이것도 오랜 공부로 이루어 낸 기능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기생은 또 `점층법'이란 것도 터득하고 있어서
   점차적으로 흥분의 도를 높이는데, 이 또한 많은 공부를 한 것임
   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허벅지와 허리의 움직이며 힘을 가하는 속도의 완
   급에 있어서 역시 보통 기생들이 미치지 못하는 독자적인 기능
   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이른바 잡았다가 놓았다 하는 `종근법
   (縱擒法)'이란 것은 그 속도와 강약의 율동이며 전율을 느끼게
   하는 진동이 전신을 사로잡아 매료시키는데, 발끝에서 머리끝까
   지 온몸을 긴장감으로 몰아가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공부와 실
   습을 거친 다음에야 터득한 기술인 것 같았다.
     일이 끝나고 난 후 김씨는 위대한 작업을 수행한 것처럼 가슴
   속이 훈훈하고 전신이 도취된 느낌을 받아 한참 동안 몽롱했다.
   그리고 하나의 진리를 깨달은 것 같아 지난날이 후회되었다.
     `바로 이것이로다. 이 기생이 잠자리 공부에 많은 노력을 기
   울인 것처럼, 나도 문장 공부에 전력을 쏟았더라면 돈을 주고 남
   에게 과거를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이후 김씨는 그 기생집에서 나가지 않고 움을 파면서 세월을
   보냈는데, 보름 정도 지나니 많이 가지고 들어온 돈이 모두 다
   탕진되고 타고 왔던 말까지 기생에게 주어 버리고는 걸어서 나
   왔다.
     김씨는 친구 집으로 가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탄을 금치
   못하니, 친구가 크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네도 겪어 보아 알겠지만,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선비는
   큰 재주를 품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하는 기술을 겸했기 때문이라네, 지금 자네가 겪었던 그 기
   생도 그 기능적인 재주 못지않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교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네를 꼼짝 못하게 잡아 둘 수가 있었네,
   자네는 그것도 모르고 그 기생에게 속아 돈을 많이 낭비했네,
   자네는 이름난 선비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름난 기생보다 수준이
   낮은 샘이네, 사람은 재능도 중요하지만 속지 않는 것 또한 중
   요하다네."
     김씨는 친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그 기생
   에게서 느꼈던 잠자리 때의 정감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이
   어서, 역시 끝없는 공부와 기능 실습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
   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조선 후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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