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제3부 기발한 처지, 웃음이 절로 나오고 |
해학으로 사람을 잘 웃기던 한 사람이 일찍이 딸 하나를 낳아
길러서 시집보내고, 그리고 늦게 아들을 하나 낳았다. 이 사람이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되었는데, 아들은 아직 강보에 싸인 어린
애였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유언 하기를,
"내 재산 모두를 시집간 딸에게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이 족자 하나를 물려주노라."
하면서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족자 하나를 주니, 주위 사람들이
몰려와 노인이 망령 들었다고 하면서 웃었다.
그래서 시집간 딸은 친정 재산을 모두 물려받아 살림이 넉넉
해졌는데, 살 길이 막막한 친정의 어린 동생을 보니 가엾어서 동
생을 데리고 와 자기 자식처럼 돌보며 잘 길렀다.
세월이 흘러 노인의 아들이 자라 소견이 났다.
`왜 부친께서 아들인 나에게는 재산을 한푼도 주지 않고 시
집간 누나에게만 다 물려주었을까? 그리고 이 족자 하나만을 나
에게 물려주었으니....필시 깊은 뜻이 있을 게다."
이렇게 생각한 아들은 족자를 들고 관청에 나아가 소송을 제
기하면서 말했다.
"누나가 저를 자식처럼 잘 길러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
니다. 그러나 부친이 무슨 뜻으로 재산을 누나에게 모두 주고,
저에게는 이 족자 하나만 물려주었는지 그 참뜻이 궁금하오니
좀 밝혀 주십시오. 결코 누나를 원망하거나 재산을 도로 찿으려
는 것이 아니라, 이 족자의 뜻을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해서 청원이 접수되니 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노인이 늙어 망령이 들었던 게 분명해."
하지만 노인 아들의 호소가 너무나 간절해 이 사실을 적어 임
금에게 보고하고 그 족자도 함께 바쳤다.
성종 임금이 족자를 펴보니 족자에는 노인이 한 사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족자를
벽에 걸어 놓고 멀리 앉아 쳐다보니, 그림 속의 노인이 손가락으
로 아랫부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임금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옳거니, 노인은 결코 망령이 든 게 아니라 가리키고 있는 족
자 아래의축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구나."
하면서 사람을 불러 그 족자의 축을 쪼개 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그 속에 종이쪽지가 들어 있고, 그 종이쪽지에는 다
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씌어 있었다.
`내가 재산을 딸에게 모두 다 주는 것은, 딸에게 어린 동생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내 재산을 균
등하게 반으로 나누도록 하라."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성종 임금은 문서를 작성하여 재
산을 남매에게 균등하게 분할해 주고 타일렀다.
"당시 부친이 재산을 어린 아들에게 다 물려주었다면, 아마
도 누나는 재산 때문에 어린 동생을 해쳤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
금처럼 동생을 잘 거두어 기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인지상
정으로 너희들만을 탓하는 말이 아니니라. 노인의 지혜가 참으
로 놀랍구나. 물러가서 의좋게 잘살아라."
이 명령을 들은 누나는 눈물을 비오듯 쏟으며울었고, 듣는
사람들은 모두 성종 임금의 추리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가슴 뿌
듯하다는 듯 큰 웃음을 터뜨렸다.<조선 초기>
[옛 고전에서 전해오는 조선왕조 500년 유머 / 김현룡 지음]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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