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원태연님의 詩

eorks 2007. 4. 4. 00:14

원태연님의

      1.<누군가 다시 만나야 한다면>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 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한다면 두번 죽어도 너와는.. ------------------------------ 2.<사랑의 크기> 사랑해요 할 때는 모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했어요 할 때야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 앉은 다음에야 사랑 그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 3.<부기도문> 가진 건 돈뿐이신 우리 아버지시여 숨기고 계신 땅을 계속 불리사 투기에 임하시옵고 친구가 외제차를 수입함과 같이 제게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쓰다 지칠 돈을 주시옵고 제가 애인에게 다른 애인을 안 걸리듯 아버지도 어머니 눈치 좀 보시옵고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신경쓰지 마시옵고 다만 법에서만 구하시옵소서 땅과 빽과 쾌락이 아버지와 제게 영원히 있사옵니다 돈도 ----------------------------------- 4.<과소비> 시원한 음료수 아니 차가운 맥주 타고 다닐 자동차 아니 외제 스포츠카 부드럽고 긴 머리 아니 얼굴에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 먹고 살 만한 은행 잔고 아니 쓰다 쓰다 남을 통장 혼자 살 만한 아파트 아니 2층 짜리 빌라 인정받을 만한 지식 아니 그들을 사용할 능력 그 다음 이 모두를 함께 누릴 사랑하는 여자 아니, 너 -------------------------------- 5.<그냥 좋은 것>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 6.<말 잘 듣는 아이> 내가 두고가라 한 건 추억 조금이었는데 느닷없이 찾아 올 썰렁함이 싫어 다른 이름을 마음속에 새겨놓을까 봐 추억 조금 남겨 놓으라 한 건데 말 잘 듣는 그 아이는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두고가 아직까지 멀리까지 혼자인걸 못 느끼게 하네 내가 가지고 가라한 건 사랑 조금이었는데 다음 세상으로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라도 생각나는 얼굴이고 싶은 욕심에 사랑 조금 가져가라 한건데 말 잘 듣는 그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마저 남겨놓지 않아 사랑에 인색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네 내가 간직하라고 한 건 슬픈 기억 조금이었는데 언젠가 잊혀지게 될 우리 얘기가 눈에 밟혀 가슴 조금 상한다해도 우리가 책임져야 할 얘기이기에 슬픈 기억 조금 간직하라 한건데 말 잘 듣는 그 아이는 없던 일까지 만들어 간직하려 하려는지 보고만 있기에도 눈물이 필요한 표정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네 ------------------------------------ 7.<정말 싫어질 때> 정말 싫어지면 말이 없습니다 표정이 없습니다 꼴도 보기가 싫다 하지 않습니다 인상을 찌뿌리지도 않습니다 때리지도 않습니다 투정도 없습니다 정말 싫어질 때는 표정도, 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말없이 떠나달란 뜻입니다 -------------------------------- 8.<누가 무엇이> 돈 좋고 그짓 좋아 씹놀리는 년들도 버젓이 고개들고 식자에 들어가는데 그분들은 희생뿐인 우리 할머니들은 이제껏 고개 못들고 썩어버린 가슴 담배로 달래게 하는가 나라 팔아먹지 못해 발 구르고 민족의 자존심을 도매로 넘겨버린 쌍놈의 것들도 애국자라 목청 찢어지게 소리치며 눈 시퍼렇게 뜨고 배 두드리며 살아가는데 누가 무엇이 죄는 그분들이 다 지신 듯 큰 기침 한번 어렵게 만들었나 억울해 저승도 못 가시는 그 원귀들을 어찌 감당하려 누가 무엇이 오늘까지 오게 했는가 -----------------------------------
    9. <눈물에...얼굴을 묻는다> 너의 목소리, 눈빛, 나를 만져주던 손길,머릿결 부르던 순간부터 각인 되어버린 이름, 어쩌면 재앙과도 같았던 사랑 우리는 서로의 사랑에 그렇게 중독되어 갔다 니가 조금만 더 천천히 울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때 너의 눈물에 손끝조차 가져가 볼 수가 없던 그 때 단 한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이유로 살점을 떼어내듯 서로를 떼어 내었던 그 때 나는 사람들이 싫었고 사람들의 생각이 싫었고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사랑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인가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렇게 서로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뿐인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었다 마지막임을 알고 만나야 했던 그날, 얼굴을, 목소리를, 상처를, 다시 한번 각인 시켰던 그날 너를 보내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었던 기도를 하얀 눈이 까맣게 덮어 버렸던 그날, 이제 나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성격으로 이런 환경으로 태어나 그렇지가 않은 너를 만난 죄 니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그것뿐이었던 죄 그렇다면 이모든 나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도 살아있음에 미련이 없음이 나를 더욱더 가볍게 만들어 준다 의미를 남겨두고 싶어 올려다본 하늘에 눈물에 얼굴을 묻던 너의 모습이 아련하게 스쳐간다 내가 태어나던 날의 하늘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 . . ------------------------------------------- 원태연 : (1971 ~ ) 서울 출생. 경희대 휴학. 1992년 1월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출간 1993년 5월 <손 끝으로 원을 그려 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만큼 널 사랑 해> 출간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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