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시

고은(高銀)님의 詩

eorks 2007. 4. 5. 15:39

고은(高銀)님의

    1.<화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 2. - 객혈(喀血)- 1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괴로움을 또한 첫눈을 노래하자 한 마리의 밤새가 되어 대낮 가득히 노래하자 2 아무리 바라보아도 어제의 하늘일 뿐 저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내 가슴에서는 눈 쌓인다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혼자도 괴로우면 여럿이구나 3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나는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고 오직 눈 먼 산보며 사랑하였다 아아 첫눈이 내리므로 노래하고 쓰러지자 --------------------------------------- 3. - 청자나무 밑 - 오랜 마을에는 꼭 정자나무 한 그루 계십니다 오랜 마을에서는 꼭 깊은 우물 시린 물 길어 올립니다 그 물 길어 올리는 시악시 계십니다 점심먹고 한동안 모이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 막 되어가도 언제나 넉넉한 정자나무 밑으로 할아범도 아범도 나오십니다 큰 나무 하나가 스무 사람 품으십니다 땀 들이고 더위 잊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 자욱합니다 몇 마디 말 허허하고 나누십니다 가만히 보니 과연 정자나무 밑에서도 좌상 자리있고 다음 자리 있어서 저절로 늙은이 섬기고 손윗사람 모십시다 그 무슨 개뼈다귀 예의지국이 아니라 이는 정녕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4. -눈 길-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 고은 : (1933 ~ ). 전북 군산 출생. 1952년 부터 10여년 동안 승려 생활함. 1958년 『현대시』추천으로 문단에 데뷔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발표 이후 <해변의 운문집>, <문의 마을에 가서>,<조국의 별>,.<만인보>,<백두산> 등 수십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

......^^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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