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高銀)님의 詩
1.<화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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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객혈(喀血)-
1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괴로움을
또한 첫눈을 노래하자
한 마리의 밤새가 되어
대낮 가득히 노래하자
2
아무리 바라보아도 어제의 하늘일 뿐
저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내 가슴에서는 눈 쌓인다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혼자도 괴로우면 여럿이구나
3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나는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고
오직 눈 먼 산보며 사랑하였다
아아 첫눈이 내리므로 노래하고 쓰러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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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청자나무 밑 -
오랜 마을에는
꼭 정자나무 한 그루 계십니다
오랜 마을에서는
꼭 깊은 우물 시린 물 길어 올립니다
그 물 길어 올리는 시악시 계십니다
점심먹고 한동안 모이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 막 되어가도
언제나 넉넉한 정자나무 밑으로
할아범도 아범도 나오십니다
큰 나무 하나가 스무 사람 품으십니다
땀 들이고 더위 잊고
매미 쓰르라미 소리 자욱합니다
몇 마디 말 허허하고 나누십니다
가만히 보니 과연 정자나무 밑에서도
좌상 자리있고 다음 자리 있어서
저절로 늙은이 섬기고 손윗사람 모십시다
그 무슨 개뼈다귀 예의지국이 아니라
이는 정녕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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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 길-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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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 (1933 ~ ). 전북 군산 출생. 1952년 부터 10여년 동안
승려 생활함. 1958년 『현대시』추천으로 문단에 데뷔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발표 이후 <해변의 운문집>,
<문의 마을에 가서>,<조국의 별>,.<만인보>,<백두산> 등
수십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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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白頭大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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